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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1937년도의 조사는 전년도의 조사와 같은 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조사방침 역시 전년도와 같았으나 고분발굴에 더하여 새로이 사지(寺址)와 전지(殿址)에 대한 조사가 추가된 점이 특기할 만하다.
고구려 고분과 관련해서는 오바 쓰네키치의 지도하에 당시 조선고적연구회의 촉탁 신분이던 다쿠보 신고(田窪眞吾)와 문화재 전문 사진기사 사와 슌이치가 현장조사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전년도에도 조사가 이루어졌던 고산리에서는 7기의 고분을 새로 발굴했으며 대동군 대보면에서도 5기의 고분을 발굴 조사했다. 이미 도굴된 형적을 남기는 고분이 많았지만 봉토와 석곽의 관계는 물론 곽실의 폐쇄 시설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조사단은 밝히고 있다.
1937년 10월에는 강동군 승호리에서 이루어진 고구려 고분의 발굴조사에는 노모리 켄이 현장조사를 지도하고 사와[澤]와 가야모토[榧本]가 조사원으로 참가하여 모두 14기의 고분을 발굴조사 하였다. 이를 통해 조사단은 고구려 고분과 백제, 신라 고분의 상관관계가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1937년의 조사에는 기존의 연구원 이외에 조선고적연구회 촉탁인 다쿠보 신고와 구주대학 법문학부 강사였던 가가미야마, 평양부립박물관의 관원이었던 오노 타다아키[小野忠明]가 참가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때의 조사도 벽화 고분의 발견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벽화 고분이 있음직한 고분을 물색하고 다녔으며 전년도에 조사를 추진하다가 그만두었던 고분 중에서 구조가 특이했던 것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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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도 고구려 고분 조사 자료번호 : ku.d_0003_004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