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 탄소연대 측정에 의한 축조 시기
5) 목탄 탄소연대 측정에 의한 축조 시기
이곳에서 출토한 목탄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도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첫 번째는 1994년 7~8월에 이루어진 크라스키노 사원지 발굴 시 출토된 목재에 대한 측정 결과, 제1시료에서는 1220±70으로 A.D 680~970, 제2시료는 1230±50으로 A.D 680~890년으로 판정되었다. 그러므로 8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이 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문명대, 2004, 「제1장 크라스키노 사원지 서구역 발굴」, 앞의 책, 25쪽.
둘째로는 2004년의 기와벽실에서 출토된 목탄에 대한 AMS 측정이 있다.본 보고서 부록 ‘2004 크라스키노 유적 AMS 측정 분석 결과’ 참조.시료가 된 목탄은 기준기표 - 96cm 깊이의 기와벽실의 바닥 북동쪽 벽에 있던 탄화된 목재 깔판의 파편의 일부였다. 목재 깔판은 벽 전체를 따라 바닥에 깔려 있었고, 폭은 75~110cm를 넘지 않았다.V.I. Boldin, 2005, 「크라스키노 성터 발굴 보고서」, 앞의 책, 27쪽.측정 결과 기와벽실 유구는 9세기 전반 시기의 것임이 판명되었다.
이상의 탄소연대 측정은 크라스키노성의 축조 시기가 8세기로부터 9세기에 걸쳐 사용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2005년도 한·러 공동 발굴지인 34구역의 온돌 유구에서도 목탄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관련 기관에서 탄소연대 측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둘째로는 2004년의 기와벽실에서 출토된 목탄에 대한 AMS 측정이 있다.본 보고서 부록 ‘2004 크라스키노 유적 AMS 측정 분석 결과’ 참조.시료가 된 목탄은 기준기표 - 96cm 깊이의 기와벽실의 바닥 북동쪽 벽에 있던 탄화된 목재 깔판의 파편의 일부였다. 목재 깔판은 벽 전체를 따라 바닥에 깔려 있었고, 폭은 75~110cm를 넘지 않았다.V.I. Boldin, 2005, 「크라스키노 성터 발굴 보고서」, 앞의 책, 27쪽.측정 결과 기와벽실 유구는 9세기 전반 시기의 것임이 판명되었다.
이상의 탄소연대 측정은 크라스키노성의 축조 시기가 8세기로부터 9세기에 걸쳐 사용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2005년도 한·러 공동 발굴지인 34구역의 온돌 유구에서도 목탄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관련 기관에서 탄소연대 측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