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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거례리고분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 418번지 일원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북한강변의 충적대지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방형의 현실(2.5*2.9m)과 우편재 연도를 가진 석실분으로, 바닥은 강자갈을 깐 이후 대형 판석을 전면에 깔았다.
출토유물
* 철정
참고문헌
약보고서
해설
2009년 정부의 ‘4대강살리기사업’ 시행에 따라 공사예정 구간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한강권역(북한강)에서도 실시되었다. 특히 화천을 가로지르는 북한강변에 위치한 거례리는 이미 여러 차례 선사 및 역사시대 유적이 확인된 바 그 중요도를 인정하여 2010년 5개 기관이 각각 권역을 나누어 110여 일간 발굴을 진행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각 구역에서 신석기에서 고려시대까지 주거지와 저장시설 등 생활유적이 밀집하여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도 석기와 토기편 등 생활유적이 대부분이며 주목할 만한 유물은 없었다.
각 시대별 무덤유적도 확인되었는데, 한백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4구간에서 석실묘(石室墓) 1기도 확인되었다. 경작지로 이용되는 등 훼손이 심하여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입구에서 석실까지 연도(羨道, 널길)가 있는, 삼국시대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인 점은 확인되었다.
철 못 몇 개를 제외하고는 출토된 유물은 전무하여 조성시기를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이 지역의 영속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백제고분으로, 고구려고분으로, 혹은 신라고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화천지역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이전의 관계는 분명치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낭천군(狼川郡)은 본디 고구려의 성천군(狌川郡)이었는데 경덕왕 개명을 하였다고 되어있다.卷第三十五 雜志 第四>지리(地理)二 신라(新羅)>낭천군 또 성천군이 야시매(也尸買)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하여 화천지역이 신라가 점유하기 이전에 고구려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가 본격적으로 남하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4세기 중반 이전에는 백제가 한강유역을 공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천지역 역시 백제의 영토였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만 백제, 고구려의 영유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고고학적 성과는 미비하여 이를 단정할 수는 없다.
거례리고분이 위치한 화천지역 북한강변 평탄지는 토양이 비옥하고 홍수 피해도 적어 거주에 적합하다. 때문에 선사시대 이후 마을 유적이 밀집되어 분포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편 강변에서도 이미 원천리 주거지 유적이 대규모로 발견된 바 있다.
고분을 통한 역사적 고증은 어려운 상태이지만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취락유적으로서 북한강유역의 문화변동 현상과 삼국의 교섭과 쟁패(爭霸)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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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례리고분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1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