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국(波斯國)의 특성과 혼인법
파사국(波斯國)은 그 선조 중에 파사닉왕(波斯匿王)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자손이 왕인 조상의 호칭[字]을 씨로 삼은 까닭에 국호(國號)가 되었다. 파사국에는 성이 있는데, 둘레가 32리이고, 성의 높이는 네 길[丈]이며, 모두 누각이 있고, 성 안에는 가옥 수백수천 간이 있으며, 성 바깥에는 불사(佛寺) 이삼백 개 소가 있다. 서쪽으로 성으로부터 15리 거리에 토산이 있는데, 산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그 산세가 이어진 것이 매우 멀고, 산중에 양을 잡아먹는 수리[鷲鳥]가 살고 있어, 그 지역 사람들이 지극한 걱정거리로 여긴다. 국중(國中)에는 우발담화(優缽曇花)주 001가 있는데, 고운 꽃이 탐할 만하다. 용구마(龍駒馬)가 난다. 함지(咸池)에서는 산호수(珊瑚樹)가 나는데, 길이가 1~2척이다. 또한 호박(琥珀) 마노(馬腦) 진주(眞珠) 매괴(玫瑰)주 002등이 나는데, 파사국 안에서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는 금과 은을 사용한다. [이 나라의] 혼인법(婚姻法)에 따르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정혼의 예물을 보내는 것[下聘]이 끝나면, 신랑이 수십 명을 이끌고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데, 신랑은 금선(金線)이 들어간 비단 겉옷과 사자비단[師子錦]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보석으로 꾸민 관[天冠]을 쓰며, 신부 또한 그렇게 한다. 신부의 형제들이 바로 나와 [신부의] 손을 잡고 끌어다가 [신랑에게] 넘겨주면, 부부의 연을 맺는 예식은 여기에서 끝난다. 파사국의 동쪽은 활국과 이웃하고, 서쪽 및 남쪽은 모두 바라문국(婆羅門國)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범률국(泛慄國)과 접하고 있다. 중대통(中大通) 2년(530)에 사자를 보내 부처의 치아[佛牙]주 003
각주 003)
를 바쳤다.佛牙: 즉 석가모니 佛의 치아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世尊의 荼毗 후에 전신이 모두 작은 알갱이의 舍利가 되었다고 하는데, 오로지 그 부분의 치아만이 손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칭하여 佛牙舍利(Dantadhatu)라고 한다. 『大般涅盤經』 後分卷 下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世尊의 다비 시에 커다란 슬픔의 힘으로 금강체를 부수어 가늘고 작은 사리로 만들었으나, 오직 네 개의 치아만은 그대로 남겨졌다. 帝釋天이 부처의 입 윗턱에서 치아 사리를 취하자, 즉시 천상으로 돌아가서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이 밖에 『觀虛空藏菩薩經』에 실린 바에 따르면, 忉利天城 북쪽의 駕禦園 가운에 佛牙塔이 있다고 한다. 『高僧法顯傳』 師子國(錫蘭, 현재의 스리랑카)條에도 기재하기를, 王城 중에 佛牙精舍가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 다른 하나의 불아가 전하여져 烏纏國(곧 烏萇國, 현재의 인도 북부에 위치)에 이르렀다고 한다. 『梁高僧傳』 卷13과 『法苑珠林』 卷12 등의 기재에 따르면, 南朝의 승려 法獻이 劉宋 元徽 3년(475)에 西域에 가서 經을 얻는 중에 于闐에 이르러 烏纏國에서 전래된 佛牙 1枚와 舍利 15알을 구하였다고 한다. 귀국 후에 南齊의 王都 建業에 살았는데, 불아를 몰래 숨겨두고 혼자 다니며 공양 예배하였다고 한다. 永明 7년(489)에 文宣王이 꿈에서 보고 비로소 이를 천하에 알렸으며, 그 뒤 佛牙를 上定林寺에 모셨다고 한다. 梁武帝 普通 3년(522)에 佛牙가 도둑맞은 뒤로 그 행적은 불명이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佛牙: 즉 석가모니 佛의 치아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世尊의 荼毗 후에 전신이 모두 작은 알갱이의 舍利가 되었다고 하는데, 오로지 그 부분의 치아만이 손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칭하여 佛牙舍利(Dantadhatu)라고 한다. 『大般涅盤經』 後分卷 下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世尊의 다비 시에 커다란 슬픔의 힘으로 금강체를 부수어 가늘고 작은 사리로 만들었으나, 오직 네 개의 치아만은 그대로 남겨졌다. 帝釋天이 부처의 입 윗턱에서 치아 사리를 취하자, 즉시 천상으로 돌아가서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이 밖에 『觀虛空藏菩薩經』에 실린 바에 따르면, 忉利天城 북쪽의 駕禦園 가운에 佛牙塔이 있다고 한다. 『高僧法顯傳』 師子國(錫蘭, 현재의 스리랑카)條에도 기재하기를, 王城 중에 佛牙精舍가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 다른 하나의 불아가 전하여져 烏纏國(곧 烏萇國, 현재의 인도 북부에 위치)에 이르렀다고 한다. 『梁高僧傳』 卷13과 『法苑珠林』 卷12 등의 기재에 따르면, 南朝의 승려 法獻이 劉宋 元徽 3년(475)에 西域에 가서 經을 얻는 중에 于闐에 이르러 烏纏國에서 전래된 佛牙 1枚와 舍利 15알을 구하였다고 한다. 귀국 후에 南齊의 王都 建業에 살았는데, 불아를 몰래 숨겨두고 혼자 다니며 공양 예배하였다고 한다. 永明 7년(489)에 文宣王이 꿈에서 보고 비로소 이를 천하에 알렸으며, 그 뒤 佛牙를 上定林寺에 모셨다고 한다. 梁武帝 普通 3년(522)에 佛牙가 도둑맞은 뒤로 그 행적은 불명이다.
색인어
- 지명
- 파사국(波斯國), 파사국, 함지(咸池), 파사국, 파사국, 활국, 바라문국(婆羅門國), 범률국(泛慄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