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혈고분/에조아나고분고분
蝦夷穴古墳
입지
이시가와현[石川縣] 노토시마정[能登島町] 스소[須曽]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구릉사면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지름 30m, 높이 4.5m의 원분으로 보고 있으나 방분일 가능성도 있다. 분구내에 남쪽으로 개구하는 횡혈식석실이 동서로 나란히 2기가 축조되었다. 7세기대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킨메이[欽明] 31년(570년)에 고구려사가 이 지역에 표착한 기록이 표이는 점, 동해에 면한 섬에 단독으로 위치한 점, 천장의 구조가 고임식인 점, 상감환두대도를 패용한 점에서 고구려계 이주민의 무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참고문헌
「史蹟須蝦夷穴古墳」, 2001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 2011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 2011
해설
노토반도 중앙 동쪽,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80m 구릉 사면에 위치한 고분으로, 1981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한쪽이 25m, 높이 4.5m로 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분의 외부 형태는 원형으로, 혹은 사각 방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는 방형으로 복원되어 있다.
해당 고분은 두 개의 횡혈식 석실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두 고분은 현재 하나의 분구로 복원되어 있다. 고분의 축조 당시부터 두 개의 무덤방을 장벽으로 나눈 쌍실묘였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별도의 고분이 붕괴되어 하나의 봉분으로 통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동쪽 석실은 전체 길이 6.2m, 현실은 길이가 2m, 폭 3.25m, 높이는 2,15m이며 연도의 길이는 4.2m, 폭 1.2m, 높이는 1.25m이다.
서쪽 석실은 조사 이전에 이미 붕괴되었으나, 전체 길이 5.9m, 현실 길이는 1.7m, 폭 2.7m, 높이 1.8m이며, 연도는 길이가 4.2m, 폭 1.1m이다. 두 석실은 크기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사용한 재료와 조영 양식이 거의 동일하다. 특히 천장의 구조는 두 석실 모두 고임식으로 천장에 평평한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일본학계에서는 동쪽 고분을 수컷으로, 서쪽 고분을 암컷으로 표현하며 한 쌍의 고분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장자(被葬者)는 지역의 수장급 인물로 파악되며, 동반 출토된 토기의 편년으로 짐작해 볼 때 고분시대의 끝 무렵인 7세기 중엽, 혹은 말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 고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분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감환두대도(象嵌環頭大刀)’가 출토되어 한반도와의 상관관계을 유추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또 고분의 전체 형태는 고구려의 고분과 유사하며, 현지 해설서에는 ‘일본의 고분 중 사례가 적은 고구려식 구조의 고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흠명[긴메이(欽明)] 31년인 570년에 고구려 사신이 해당 지역에 표착한 기록이 있는데, 해당고분의 조영과 모종의 연관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두 묘실은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 내부를 관람할 수 있으며, 출토 유물들은 하이혈 역사 센터에 수장, 전시되고 있다.
고분은 한쪽이 25m, 높이 4.5m로 남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분의 외부 형태는 원형으로, 혹은 사각 방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는 방형으로 복원되어 있다.
해당 고분은 두 개의 횡혈식 석실이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두 고분은 현재 하나의 분구로 복원되어 있다. 고분의 축조 당시부터 두 개의 무덤방을 장벽으로 나눈 쌍실묘였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별도의 고분이 붕괴되어 하나의 봉분으로 통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동쪽 석실은 전체 길이 6.2m, 현실은 길이가 2m, 폭 3.25m, 높이는 2,15m이며 연도의 길이는 4.2m, 폭 1.2m, 높이는 1.25m이다.
서쪽 석실은 조사 이전에 이미 붕괴되었으나, 전체 길이 5.9m, 현실 길이는 1.7m, 폭 2.7m, 높이 1.8m이며, 연도는 길이가 4.2m, 폭 1.1m이다. 두 석실은 크기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사용한 재료와 조영 양식이 거의 동일하다. 특히 천장의 구조는 두 석실 모두 고임식으로 천장에 평평한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일본학계에서는 동쪽 고분을 수컷으로, 서쪽 고분을 암컷으로 표현하며 한 쌍의 고분으로 파악하고 있다.
피장자(被葬者)는 지역의 수장급 인물로 파악되며, 동반 출토된 토기의 편년으로 짐작해 볼 때 고분시대의 끝 무렵인 7세기 중엽, 혹은 말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 고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분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감환두대도(象嵌環頭大刀)’가 출토되어 한반도와의 상관관계을 유추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또 고분의 전체 형태는 고구려의 고분과 유사하며, 현지 해설서에는 ‘일본의 고분 중 사례가 적은 고구려식 구조의 고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흠명[긴메이(欽明)] 31년인 570년에 고구려 사신이 해당 지역에 표착한 기록이 있는데, 해당고분의 조영과 모종의 연관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두 묘실은 복원 공사를 통해 현재 내부를 관람할 수 있으며, 출토 유물들은 하이혈 역사 센터에 수장,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