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조선의 통교에 대한 사도(邪道) 관련 재판 기록 목록
○ 일본과 조선의 통교에 사도(邪道)가 있다고 야나가와 부젠 시게오키(柳川豊前調興)주 001
각주 001)
가 막부에 소송했지만 부젠의 잘못으로 판결된 재판에 관련된 모든 기록.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1603~1684). 쓰시마 번의 가로. 겐바노카미(玄蕃頭), 부젠노카미(豊前守)라 칭하였고, 호는 式山, 梅軒, 素庵이다. 부친은 도시나가(智永), 조부는 시게노부(調信). 시게오키는 에도에서 태어나 1613년 가독을 계승,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의 고쇼(小姓)에 임명되어 막부 直臣과 같은 대우를 받는 등 번주 소씨의 가신들 중에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시게오키는 1631(寬永 8)년에 번주 소씨로부터 받은 모든 권한을 반환할 것을 선언하고, 번주 요시나리가 국서를 개찬(改竄)하고 쇼군의 사절을 무단으로 조선에 파견했다고 막부에 고발하였다. 하지만 막부의 심의 결과 1635년 쓰가루(津輕)로 유배되어, 끝내 사면받지 못한 채 1684년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구지(公事)주 002 기록 상(上) 목록
서(序)
1. 조선국 통신사(通信使) 내빙(來聘)의 순서 및 조선정벌(征伐)의 기원.
2. 야나가와 부젠 시게오키가 지교(知行)주 003 를 반납하겠다고 함.
3. 로주(老中)주 004
4. 소송에 관해 처음으로 쇼군이 아시게 됨.
5. 잇켄(一件)에 대해 나(소 요시나리)주 005
6. 도이 오이노카미님댁에 로주들이 모여서 나(요시나리)와 시게오키를 불러 질의함.
7. 에도 성에서 잇켄(一件)에 관해 질의하시겠다는 봉서(奉書)주 007가 내려옴.
8. 사카이 빈고노카미(酒井備後守)주 008 댁에 로주들이 열좌(列座)한 가운데, 보초로(方長老)의 상경(上京)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올리게 된 경위.
9. 오이노카미님이 시게오키를 불러 물어보심.
10. 오이노카미님이 나를 불러서 시게오키가 말한 취지에 대한 질문에 올린 답변, 또 보초로 및 시치에몬(七右衛門)을 에도에 불러오라는 것이 쇼군의 뜻이라고 말씀함.
11. 오이노카미님 댁에서 부하 후루가와 우마노스케(古川右馬助)주 009, 요코다 가쿠자에몬(橫田角左衛門)주 010, 시노다 구로자에몬(篠田九郞左衛門)주 011을 쓰시마에 파견하라고 명하시고, 잇켄(一件)이 종결될 때까지 조선에 왕래하는 배는 중지한다고 말씀함.
12. 보초로, 시치에몬을 불러 해륙(海陸)의 상태 및 잇켄에 관련된 자를 남김없이 부르라고 말씀함.
13. 조선에 왕래하는 배를 정지시키는 건에 관해 조선에서 의심스럽게 생각할 것이므로 나와 시게오키가 조선에 사자를 보내도록 말씀함.
14. 쓰시마 및 부산포에 보낸 서신에 로주의 인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씀함.
附記) 도항증서(吹噓)의 도장에 대해서는 우마노스케가 말씀 올림.
15. 보초로 및 그 외의 사람들 모두 오사카에 도착했다고 알림.
16. 보초로 및 스기무라 우네메(杉村采女)주 012, 야나가와 가게유(柳川勘解由)주 013가 도착함.
17. 오이노카미님 댁에 쓰시마에서 불려온 자들 모두를 불러서 심문함.
18. 보초로와 마쓰오 시치에몬(松尾七右衛門)의 대결 및 우마노스케가 아뢴 것.
19. 보초로가 조선의 수도로 상경한 것에 관해 스기무라 우네메를 심문함.
20. 스기무라 우네메와 시치에몬이 대결함.
21. 고쇼마루(御所丸)주 014 건에 관해 보초로를 심문함.
22. 고쇼마루에 대해 야나가와 가게유를 심문함.
23. 로주가 마고시치(孫七)를 불러 모서(謀書)의 도장을 판 경위에 관해 질문함.
24. 로주가 사고 분에몬(佐護分右衛門)에게 서계를 바꾼 일에 관해 질문함.
25. 로주 도이 도시카쓰님 댁에서 회의하여, 잇켄에 관계한 자들을 모두 불러 심문함.
26. 조선에 왕래하던 배를 중지한다고 전하러 건너 간 사자가 돌아왔다고 아룀.
27. 큰 글자로 쓴 약서(約書)와 해동기(海東記)를 로주께 바침.
28. 부젠(豊前), 시치에몬의 서약서를 로주에게 올림.
29. 1635(寬永 12)년 을해년 3월 21일 다이유인(大猷院)주 015 앞에서 직접 심문한 내용. 부젠과 대결했는데 내가 이치에 맞다는 것으로 재판이 마무리됨.
30. 보초로·야나가와 부젠은 유배(流罪), 시치에몬 부자(父子)는 사형(死罪)을 언도받음.
31. 다이유인님 앞에 불려가서 (쇼군께서) 직접 판결하신 내용.
32. 로주로부터 조서(條書)를 건네받음.
33. 류호인(流芳院)주 016은 유죄(流罪), 시치에몬에 협력한 자, 쇼슈소(邵首座)주 017 등에게 추방을 명함.
34. 부젠의 부하 마쓰오카 고로에몬(松岡五郞右御門), 요시다 추에몬(吉田忠右衛門)에게 말함.
35. 미야가와 에몬(宮川右衛門)·시마오 사키치에몬(嶋雄佐吉右衛門)을 쓰시마에 내려 보냄.
2. 야나가와 부젠 시게오키가 지교(知行)주 003 를 반납하겠다고 함.
3. 로주(老中)주 004
각주 004)
에게 호출되어 소송(公事)에 대해 처음으로 질의 받음.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관직. 쇼군에 직속되어 있으며, 幕政을 총괄하고 朝廷과 다이묘(大名)에 관한 일을 취급한다. 정원은 4~5명이고, 매월 당번제로 교대근무하며, 통상 3만 석 이상의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중에서 보임(補任)한다. 다이묘 신분이던 시기의 도쿠가와 가문의 도시요리(年寄)에서 유래하며, 간에이(寬永) 무렵에 로주라는 명칭이 정착하였다. 로주의 최저 가록(家祿)은 2만 5,000석이며,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老中格’이라고 불렀다. 諸藩에서는 家老를 로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官職と位階』)
4. 소송에 관해 처음으로 쇼군이 아시게 됨.
5. 잇켄(一件)에 대해 나(소 요시나리)주 005
각주 005)
의 생각을 묻도록 도이 오이노카미(土井大炊頭)주 006님에게 명함.쓰시마 번의 2대 번주 소 요시나리(宗義成, 1604~1657).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15년에 요시토시가 서거하자 상경하여 오고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및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를 알현한 뒤에 가독상속을 허락받고 번주가 되었다. 菩提寺인 반쇼인(万松院)을 창건했고, 조선통신사의 접대 간소화에 따른 재정 절감, 은광산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藩政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전념했다. 1635년, 쓰시마 번이 조선과의 통교 과정에서 국서(國書)를 개찬(改竄)한 사실이 막부에 폭로되어 개역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直裁한 결과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등을 처벌하는 것에 그치고 소씨는 개역을 면하였다. (『人名辭典』)
6. 도이 오이노카미님댁에 로주들이 모여서 나(요시나리)와 시게오키를 불러 질의함.
7. 에도 성에서 잇켄(一件)에 관해 질의하시겠다는 봉서(奉書)주 007가 내려옴.
8. 사카이 빈고노카미(酒井備後守)주 008 댁에 로주들이 열좌(列座)한 가운데, 보초로(方長老)의 상경(上京)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올리게 된 경위.
9. 오이노카미님이 시게오키를 불러 물어보심.
10. 오이노카미님이 나를 불러서 시게오키가 말한 취지에 대한 질문에 올린 답변, 또 보초로 및 시치에몬(七右衛門)을 에도에 불러오라는 것이 쇼군의 뜻이라고 말씀함.
11. 오이노카미님 댁에서 부하 후루가와 우마노스케(古川右馬助)주 009, 요코다 가쿠자에몬(橫田角左衛門)주 010, 시노다 구로자에몬(篠田九郞左衛門)주 011을 쓰시마에 파견하라고 명하시고, 잇켄(一件)이 종결될 때까지 조선에 왕래하는 배는 중지한다고 말씀함.
12. 보초로, 시치에몬을 불러 해륙(海陸)의 상태 및 잇켄에 관련된 자를 남김없이 부르라고 말씀함.
13. 조선에 왕래하는 배를 정지시키는 건에 관해 조선에서 의심스럽게 생각할 것이므로 나와 시게오키가 조선에 사자를 보내도록 말씀함.
14. 쓰시마 및 부산포에 보낸 서신에 로주의 인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씀함.
附記) 도항증서(吹噓)의 도장에 대해서는 우마노스케가 말씀 올림.
15. 보초로 및 그 외의 사람들 모두 오사카에 도착했다고 알림.
16. 보초로 및 스기무라 우네메(杉村采女)주 012, 야나가와 가게유(柳川勘解由)주 013가 도착함.
17. 오이노카미님 댁에 쓰시마에서 불려온 자들 모두를 불러서 심문함.
18. 보초로와 마쓰오 시치에몬(松尾七右衛門)의 대결 및 우마노스케가 아뢴 것.
19. 보초로가 조선의 수도로 상경한 것에 관해 스기무라 우네메를 심문함.
20. 스기무라 우네메와 시치에몬이 대결함.
21. 고쇼마루(御所丸)주 014 건에 관해 보초로를 심문함.
22. 고쇼마루에 대해 야나가와 가게유를 심문함.
23. 로주가 마고시치(孫七)를 불러 모서(謀書)의 도장을 판 경위에 관해 질문함.
24. 로주가 사고 분에몬(佐護分右衛門)에게 서계를 바꾼 일에 관해 질문함.
25. 로주 도이 도시카쓰님 댁에서 회의하여, 잇켄에 관계한 자들을 모두 불러 심문함.
26. 조선에 왕래하던 배를 중지한다고 전하러 건너 간 사자가 돌아왔다고 아룀.
27. 큰 글자로 쓴 약서(約書)와 해동기(海東記)를 로주께 바침.
28. 부젠(豊前), 시치에몬의 서약서를 로주에게 올림.
29. 1635(寬永 12)년 을해년 3월 21일 다이유인(大猷院)주 015 앞에서 직접 심문한 내용. 부젠과 대결했는데 내가 이치에 맞다는 것으로 재판이 마무리됨.
30. 보초로·야나가와 부젠은 유배(流罪), 시치에몬 부자(父子)는 사형(死罪)을 언도받음.
31. 다이유인님 앞에 불려가서 (쇼군께서) 직접 판결하신 내용.
32. 로주로부터 조서(條書)를 건네받음.
33. 류호인(流芳院)주 016은 유죄(流罪), 시치에몬에 협력한 자, 쇼슈소(邵首座)주 017 등에게 추방을 명함.
34. 부젠의 부하 마쓰오카 고로에몬(松岡五郞右御門), 요시다 추에몬(吉田忠右衛門)에게 말함.
35. 미야가와 에몬(宮川右衛門)·시마오 사키치에몬(嶋雄佐吉右衛門)을 쓰시마에 내려 보냄.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公事) 기록 상(上)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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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1603~1684). 쓰시마 번의 가로. 겐바노카미(玄蕃頭), 부젠노카미(豊前守)라 칭하였고, 호는 式山, 梅軒, 素庵이다. 부친은 도시나가(智永), 조부는 시게노부(調信). 시게오키는 에도에서 태어나 1613년 가독을 계승,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의 고쇼(小姓)에 임명되어 막부 直臣과 같은 대우를 받는 등 번주 소씨의 가신들 중에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시게오키는 1631(寬永 8)년에 번주 소씨로부터 받은 모든 권한을 반환할 것을 선언하고, 번주 요시나리가 국서를 개찬(改竄)하고 쇼군의 사절을 무단으로 조선에 파견했다고 막부에 고발하였다. 하지만 막부의 심의 결과 1635년 쓰가루(津輕)로 유배되어, 끝내 사면받지 못한 채 1684년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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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5)
쓰시마 번의 2대 번주 소 요시나리(宗義成, 1604~1657).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15년에 요시토시가 서거하자 상경하여 오고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및 제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를 알현한 뒤에 가독상속을 허락받고 번주가 되었다. 菩提寺인 반쇼인(万松院)을 창건했고, 조선통신사의 접대 간소화에 따른 재정 절감, 은광산 개발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藩政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전념했다. 1635년, 쓰시마 번이 조선과의 통교 과정에서 국서(國書)를 개찬(改竄)한 사실이 막부에 폭로되어 개역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直裁한 결과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등을 처벌하는 것에 그치고 소씨는 개역을 면하였다. (『人名辭典』)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 각주 011)
- 각주 012)
- 각주 013)
- 각주 014)
- 각주 015)
- 각주 016)
- 각주 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