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成祖) 즉위 후 극덕이화탁이 죽고 아들 실묵찰한(實黙察罕)이 뒤를 이었고, 합밀(哈密)의 충순왕이 가한 곽륵제(郭勒齊)에게 독살되자 토벌한 등의 글
성조(成祖)가 즉위한 그해 겨울에, 관원을 파견하여 새서와 채폐를 휴대하여 그 나라에 출사토록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적아화자(黑的兒火者)가 죽자 [그의] 아들 사미사간(沙迷査干)
주 001이 그 뒤를 이었다. 영락 2년(1404)에 [사미사간은] 사신을 파견하여 옥박(玉璞)·명마(名馬)를 바치니,주 002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어주고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려주었다. 당시 합밀의 충순왕(忠順王) 안극첩목아(安克帖木兒, 재위 1393~1405)주 003가 가한(可汗) 귀력적(鬼力赤)
주 004
각주 004)
에게 독살(毒殺)되자 사미사간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토벌하였다. 영락제는 그의 의로움을 가상히 여겨 사신을 보내어 채폐를 상으로 내려주고, 충순왕의 작위를 계승한 태태(脫脫, 재위 1405~1411)주 005와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였다.주 006 [영락] 4년(1406) 여름에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니, 홍려시승(鴻臚寺丞) 유첩목아(劉帖木兒)에게 명하여 칙서와 폐백(幣帛)을 가지고 가서 위로하고 하사토록 했으며, 그 사신과 함께 가도록 하였다.주 007 가을과 겨울 및 이듬해 여름에 세 차례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는데, 그 기회에 살마아한은 본래 그들 조상의 옛 땅임을 말하며, 군대를 보내어 수복(收復)해주기를 청하였다. 중관 파태(把太)·이달 및 유첩목아에게 명하여 칙서를 가지고 가 타일러, 시세(時勢)를 잘 살펴서 행동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채폐를 하사하였다.주 008 [영락] 6년(1408)에 파태 등이 돌아와 사미사간이 이미 사망하고 아우 마합마(馬哈麻)
주 009가 그 뒤를 이었음을 아뢰었다. 영락제는 즉각 파태 등에게 명하여 [그 나라에] 가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아울러 새로운 왕에게 하사품을 내렸다.주 010
鬼力赤(?~1408): 建文 4년(1402)에 北元 湣宗 順天皇帝 坤帖木兒(Gün Temür)를 죽이고, 阿魯台 등에 옹립되어 大汗이 되었다. 그는 北元의 國號를 폐지하고 韃靼(Tatar)可汗이라 칭했으나, 正統 汗의 후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明朝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이에 명조와 通交를 했다. 이로 인해 그는 蒙古 各部의 불만을 샀으며, 결국 1408년에 知院인 阿魯台에게 피살되었다. 그의 尊號는 兀雷帖木兒汗(Örüg Temür)이며, 그가 피살된 후 坤帖木兒(Gün Temür)의 동생 本雅失里(尊號는 完者帖木兒汗, Öljei Temür Khagan)가 영입되어 大汗이 되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鬼力赤(?~1408): 建文 4년(1402)에 北元 湣宗 順天皇帝 坤帖木兒(Gün Temür)를 죽이고, 阿魯台 등에 옹립되어 大汗이 되었다. 그는 北元의 國號를 폐지하고 韃靼(Tatar)可汗이라 칭했으나, 正統 汗의 후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明朝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이에 명조와 通交를 했다. 이로 인해 그는 蒙古 各部의 불만을 샀으며, 결국 1408년에 知院인 阿魯台에게 피살되었다. 그의 尊號는 兀雷帖木兒汗(Örüg Temür)이며, 그가 피살된 후 坤帖木兒(Gün Temür)의 동생 本雅失里(尊號는 完者帖木兒汗, Öljei Temür Khagan)가 영입되어 大汗이 되었다.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색인어
- 이름
- 성조(成祖), 흑적아화자(黑的兒火者), 사미사간(沙迷査干), 사미사간, 안극첩목아, 安克帖木兒, 귀력적(鬼力赤), 사미사간, 영락제, 태태, 脫脫, 유첩목아(劉帖木兒), 파태(把太), 이달, 유첩목아, 파태, 사미사간, 마합마(馬哈麻), 영락제, 파태
- 지명
- 합밀, 살마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