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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벽화

널방_서벽_묘주부부출행도(상단)_상세_귀부인3

  • 저필자
    김진순(부산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
수산리 벽화고분 널방 서벽 상단의 출행도에 그려진 인물들 가운데 세 명의 귀부인을 따르고 있는 또 다른 귀부인이다. 이 귀부인은 앞의 세 여성들과 달리 볼과 이마에 붉은 연지를 찍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귀족적인 복장에 우아하게 틀어 올린 얹은머리를 한 모습은 동일하다. 귀부인의 크기는 앞서 가는 묘주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인들보다도 더 작게 그려졌다. 이러한 차이는 이 부인의 신분적 지위를 추측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이 귀부인은 앞의 두 부인들과 거의 흡사한 복장 형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시녀가 아닌 귀족 신분의 여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얼굴에 연지도 찍지 않고 크기도 더 작게 묘사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앞의 여인들과 같은 급의 지위를 지닌 것으로는 볼 수 없으며, 아마도 묘주 뒤를 따르고 있는 묘주 아들의 부인 즉 묘주의 며느리가 아닌 가 의심된다. 이러한 추측은 고대 인물화의 표현 특징 즉 신분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는 묘사법을 생각해볼 때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특히 이 여인의 짧은 인중과 작고 붉은 입술은 앞의 세 귀부인들과 비교해볼 때 훨씬 젊은 인상을 주어 화공의 세심하면서도 탁월한 표현력까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묘주와 세 부인들 그리고 아들, 며느리까지 함께한 일가족의 화목한 나들이 장면이다.
묘주의 며느리로 추정되는 이 귀부인의 복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고리는 앞의 두 귀부인과 동일한 양식 즉 저고리의 목깃과 앞섶, 소매부리, 도련에 붉은 실로 화려하게 수놓인 비단 천을 활용하여 널찍하게 선을 대고, 다시 목깃과 소매부리에 붉은 색의 선을 대어 극도의 화려함을 추구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귀부인들의 복식은 평민이나 시종들의 저고리가 한 겹의 민무늬 선만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치마도 역시 앞의 귀부인들 즉 묘주의 둘째, 셋째 부인과 같은 형태로, 주름 폭이 촘촘한 민무늬 천으로 제작된 치마를 착용하고 있다.
저고리 착의법은 옷섶을 오른쪽으로 여며 입는 우임(右袵 : 왼쪽 옷섶을 오른쪽 가슴으로 여며서 입는 방식) 방식이다. 고구려의 전통적인 착의법은 좌임(左袵 : 오른쪽 옷섶을 왼쪽 가슴으로 여며서 입는 방식)이었으나 한족의 우임방식이 고구려로 전래됨에 따라 좌임과 함께 우임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주부부가 나란히 쓰고 있던 산개(傘蓋 : 고대에 귀족들이 나들이 할 때 태양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오늘날의 양산과 같은 것임)는 보이지 않는다.
이 귀부인의 손동작은 묘주 부인과 두 번째 부인처럼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 잡은 공수(拱手) 형태가 아니라, 묘주와 묘주아들, 그리고 묘주의 세 번째 부인처럼 두 손을 통이 넓은 소매 자락 밖으로 내밀어 마치 부처님의 수인(手印: 부처님의 손가락 모양)을 모방한 듯한 특이한 형태를 보여준다. 인물의 적절한 비례, 화려한 치장, 유려한 옷 주름 선 등에서 고구려 화공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이 귀부인상도 고구려 귀족부인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차림새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회화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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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방_서벽_묘주부부출행도(상단)_상세_귀부인3 자료번호 : kk.d_0004_0040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