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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 태조(太祖) 때의 사신과 조공

  • 국가
    삼불제(三佛齊)
[송 태조] 건륭(建隆) 원년(960) 9월, 그 왕 실리호대하리단(悉利胡大霞里檀, Seri Kuda Haridona)이 사신으로 이차제(李遮帝)를 파견하여 조공을 올렸다. [건륭] 2년(961) 여름에는, 또한 포멸(蒲蔑)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방물을 조공했다. 그해 겨울에 왕 실리오야(室利烏耶, Seri Wuja)가 정사 차야가(茶野伽)와 부사 가말타(嘉末吒)를 파견하여 조공했다. 국호가 생류(生留)주 001
각주 001)
生留: 生留에 대해서 馮承鈞은 末留를 誤記한 것으로 보았다. 末留는 『新唐書』 「波斯傳」에서 摩羅遊로, 『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는 末羅瑜로, 『南海寄歸內法傳』에서는 末羅遊洲로 기록하고 있다. Malayu를 음차한 것으로 수마트라섬 Jambi 부근에 위치했으며 스리비쟈야의 속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馮承鈞, 1937: 170; 陳佳榮, 1986: 9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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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왕 이서림남미일래(李犀林男迷日來)도 사신을 파견하여 함께 도착하여 방물을 조공했다. [건륭] 3년(962) 봄에도 실리오야가 또 다시 정사 이여림(李麗林)과 부사 이아말(李鴉末), 판관 타타벽(吒吒璧) 등을 파견해 내공(來貢)했는데, 귀국할 때 하얀 야크꼬리·백자자기·은기(銀器)·비단실로 짠 안장과 고삐 2벌 등을 하사하였다. 개보 4년(971)에는 이하말(李何末)을 사신으로 보내왔는데, 수정과 화유(火油)주 002
각주 002)
火油: 불을 붙일수 있는 기름이라는 의미로 석유로 추정된다. 宋 范坰·林禹 『吳越備史』 「文穆王」에는 “戰血旣漬, 踐豆者靡不顚踣, 命進火油焚之.”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를 猛火油로 기록한 부분도 적지 않은데 宋 張世南 『遊宦紀聞』 卷3에는 “唐顯德五年, 國王因德漫, 遣使者莆訶散來, 貢猛火油八十四甁, 薔薇水十五甁. 其表以貝多葉書之, 香木爲函.”이라 하였고, 『資治通鑑』 〈後梁 均王 貞明 3년〉조에서는 “吳王遣使遺契丹主以猛火油, 曰: ‘攻城, 以此油然火焚樓櫓, 敵以水沃之, 火愈熾.’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宋史』 「外國傳」5 〈占城國〉에서도 “周顯德中, 其王釋利因德漫遣其臣莆訶散貢方物 …… 猛火油得水愈熾, 皆貯以瑠璃甁.”이라고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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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조공하였다. [개보] 5년에도 다시 내공하였다. [개보] 7년(974)에는 상아·유향·장미수(薔薇水)주 003
각주 003)
薔薇水: 장미꽃을 증류하여 만든 향수로 페르시아어로는 gulab, 아라비아어로는 mawarol, 말레이어로는 mawar로 일컫는다. 南唐 張泌의 『妝樓記』 〈薔薇水〉조목에 “周顯德五年(958), 昆明國獻薔薇水十五甁, 云得自西域, 以灑衣, 衣敝而香不滅.”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諸蕃志』 卷下 「志物」의 〈薔薇水〉에서도 “薔薇水, 大食國花露也, 五代時蕃使蒲歌散以十五缾效貢, 厥後罕有至者.”라고 언급하고 있다. 원래 아라비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향수로 오대를 전후하여 여러 경로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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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자(萬歲棗)·편도(褊桃)·백사탕(白砂糖)·수정반지·유리병·산호수 등을 조공했다. [개보] 8년(975)에 또 다시 포타한(蒲陁漢) 등을 사절로 보내 방물을 바치자, 관대(冠帶)와 기폐(器幣)주 004
각주 004)
器幣: 천자가 제후 왕에게 내리는 禮器와 玉帛를 일컫는다. 『左傳』 桓公 6년에도 “不以國, 不以官, 不以山川, 不以隱疾, 不以畜牲, 不以器幣.”가 언급되는데 杜預는 注에서 “幣, 玉帛.”으로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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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하사되었다.

  • 각주 001)
    生留: 生留에 대해서 馮承鈞은 末留를 誤記한 것으로 보았다. 末留는 『新唐書』 「波斯傳」에서 摩羅遊로, 『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는 末羅瑜로, 『南海寄歸內法傳』에서는 末羅遊洲로 기록하고 있다. Malayu를 음차한 것으로 수마트라섬 Jambi 부근에 위치했으며 스리비쟈야의 속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馮承鈞, 1937: 170; 陳佳榮, 1986: 991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2)
    火油: 불을 붙일수 있는 기름이라는 의미로 석유로 추정된다. 宋 范坰·林禹 『吳越備史』 「文穆王」에는 “戰血旣漬, 踐豆者靡不顚踣, 命進火油焚之.”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를 猛火油로 기록한 부분도 적지 않은데 宋 張世南 『遊宦紀聞』 卷3에는 “唐顯德五年, 國王因德漫, 遣使者莆訶散來, 貢猛火油八十四甁, 薔薇水十五甁. 其表以貝多葉書之, 香木爲函.”이라 하였고, 『資治通鑑』 〈後梁 均王 貞明 3년〉조에서는 “吳王遣使遺契丹主以猛火油, 曰: ‘攻城, 以此油然火焚樓櫓, 敵以水沃之, 火愈熾.’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宋史』 「外國傳」5 〈占城國〉에서도 “周顯德中, 其王釋利因德漫遣其臣莆訶散貢方物 …… 猛火油得水愈熾, 皆貯以瑠璃甁.”이라고 언급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薔薇水: 장미꽃을 증류하여 만든 향수로 페르시아어로는 gulab, 아라비아어로는 mawarol, 말레이어로는 mawar로 일컫는다. 南唐 張泌의 『妝樓記』 〈薔薇水〉조목에 “周顯德五年(958), 昆明國獻薔薇水十五甁, 云得自西域, 以灑衣, 衣敝而香不滅.”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諸蕃志』 卷下 「志物」의 〈薔薇水〉에서도 “薔薇水, 大食國花露也, 五代時蕃使蒲歌散以十五缾效貢, 厥後罕有至者.”라고 언급하고 있다. 원래 아라비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향수로 오대를 전후하여 여러 경로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器幣: 천자가 제후 왕에게 내리는 禮器와 玉帛를 일컫는다. 『左傳』 桓公 6년에도 “不以國, 不以官, 不以山川, 不以隱疾, 不以畜牲, 不以器幣.”가 언급되는데 杜預는 注에서 “幣, 玉帛.”으로 설명한 바 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송 태조], 실리호대하리단(悉利胡大霞里檀, Seri Kuda Haridona), 이차제(李遮帝), 포멸(蒲蔑), 실리오야(室利烏耶, Seri Wuja), 차야가(茶野伽), 가말타(嘉末吒), 이서림남미일래(李犀林男迷日來), 실리오야, 이여림(李麗林), 이아말(李鴉末), 타타벽(吒吒璧), 이하말(李何末), 포타한(蒲陁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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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 태조(太祖) 때의 사신과 조공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5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