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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막려(邈黎)가 국왕의 표장을 보내옴

  • 국가
    막려(邈黎)
막려국(邈黎國)[북송 철종(哲宗)] 원우 4년(1089)에 반차령이(般次泠移)사말속미(四抹粟迷) 등을 전국(闐國)의 흑한왕(黑汗王)에 보내고, 본국 국왕의 표장도 함께 보내왔다. 유사(有司)는 전에 이 나라가 입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전(于闐) 주 001
각주 001)
于闐: 중국에서 于闐이라는 이름은 漢代부터 淸代까지 줄 곧 사용되는데, 한대 于闐의 都城은 西城이며, 長安에서 9,670리 떨어져 있었다고 하며, 호수는 3,300호, 전투 병력은 2,400명이라고 하였다(『漢書』 「西域傳」). 『北史』 于闐에 따르면, 高昌 以西의 사람들의 모습은 눈이 깊고 코가 높은데 于闐國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于闐이란 이름은 佉盧文書에는 Khotana, 梵語에는 Gostana, 西藏語에는 Li-yul이라고 되어 있다. 우전국명과 관련해서 많은 학설이 있으나 白鳥庫吉은 西藏語로 玉은 Gyu이며 촌락은 Tang이므로 GyuTang은 玉城을 뜻한다고 하였다(『往五天竺國傳箋釋』, 2000). 玄獎은 ‘瞿薩旦那國’라 칭했는데, ‘瞿薩旦那’는 범어로 ‘Gostana’라고 한다(『大唐西域記校注』,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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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격식에 따를 것주 002
각주 002)
邈黎國의 진봉격식을 우전국에 준한다는 기사는 『長編』에서도 확인된다. “禮部言, 邈黎國, 般擦冷移·四抹粟迷等, 齎于闐國和罕王, 并本國蕃王表章貢奉. 縁自來不曾入貢, 請比附于闐國進奉條式, 從之(『長編』, 卷429 哲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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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청했다. 이에 따랐다.

  • 각주 001)
    于闐: 중국에서 于闐이라는 이름은 漢代부터 淸代까지 줄 곧 사용되는데, 한대 于闐의 都城은 西城이며, 長安에서 9,670리 떨어져 있었다고 하며, 호수는 3,300호, 전투 병력은 2,400명이라고 하였다(『漢書』 「西域傳」). 『北史』 于闐에 따르면, 高昌 以西의 사람들의 모습은 눈이 깊고 코가 높은데 于闐國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于闐이란 이름은 佉盧文書에는 Khotana, 梵語에는 Gostana, 西藏語에는 Li-yul이라고 되어 있다. 우전국명과 관련해서 많은 학설이 있으나 白鳥庫吉은 西藏語로 玉은 Gyu이며 촌락은 Tang이므로 GyuTang은 玉城을 뜻한다고 하였다(『往五天竺國傳箋釋』, 2000). 玄獎은 ‘瞿薩旦那國’라 칭했는데, ‘瞿薩旦那’는 범어로 ‘Gostana’라고 한다(『大唐西域記校注』, 2000). 바로가기
  • 각주 002)
    邈黎國의 진봉격식을 우전국에 준한다는 기사는 『長編』에서도 확인된다. “禮部言, 邈黎國, 般擦冷移·四抹粟迷等, 齎于闐國和罕王, 并本國蕃王表章貢奉. 縁自來不曾入貢, 請比附于闐國進奉條式, 從之(『長編』, 卷429 哲宗).”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북송 철종(哲宗)], 반차령이(般次泠移), 사말속미(四抹粟迷)
지명
막려국(邈黎國), 전국(闐國), 우전(于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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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려(邈黎)가 국왕의 표장을 보내옴 자료번호 : jo.k_0020_0489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