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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한열(韓說) 등을 보내 동월과 전투를 벌임

  • 국가
    민월(閩粤)
다음 해(원정 6년, 전111) 가을, 여선(餘善)은 누선장군이 [동월을] 치게 해 달라고 청하였으며 한나라 군대가 국경에 주둔하여 앞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을 듣자,주 001
각주 001)
顔師古는 이 구절을 “군대가 국경 머리맡에 와 있으니 내려와 칠 것을 두려워함을 말한다(言兵在境首, 恐將來討之)”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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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반기를 들고 군사를 징발하여 한나라와 통하는 길을 막아섰다. 장군 추력(騶力) 등을 ‘탄한장군(呑漢將軍)’주 002
각주 002)
吞漢將軍 : ‘한나라를 삼킬 장군’이라는 뜻이다. 漢의 ‘樓船將軍’이나 ‘橫海將軍’ 등과 같이 상설직이 아닌 당시 부여받은 임무에 따른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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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백사(白沙) 주 003
각주 003)
白沙 : 현재의 江西省 波陽縣 서쪽이다. 『太平寰宇記』 권107 饒州 鄱陽縣에 “白沙在府西. 水路百二十里, 沙白如雪. 因以爲名”이라 하여 모래가 눈처럼 희어서 地名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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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武林) 주 004
각주 004)
武林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武林은 豫章의 경계에 있다. 『索隱』은 또한 豫章 북쪽 200리는 鄱陽의 경계에 접해 있는데, 그 땅의 이름이 白沙이며, 작은 물줄기가 호수로 흘러들어가 이름을 白沙阬이라 한다. 그 동남쪽 80리에 武陽亭이 있고 亭의 동남쪽 30리의 땅 이름이 武林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白沙와 武林은 모두 閩越에서 京道로 들어가는 통로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武林은 현재의 江西省 餘干縣 동북 30리 武陵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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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령(梅嶺)으로 들어가 의 교위(校尉) 세 명을 죽였다. 이때 한나라에서는 대사농 장성(張成) 주 005
각주 005)
大司農 張成 : 『漢書』 「百官公卿表」에는 大農令으로, 『史記』 「東越傳」에는 大農으로 되어 있다. 張成은 人名인데, 상세한 이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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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이전 산주후(山州侯) 치(齒) 주 006
각주 006)
故山州侯 齒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齒는 城陽 共王 劉喜의 아들이다. 武帝 元朔 4년(전125) 山州侯에 봉해졌으나 元鼎 5년에 酎金律에 걸려 삭탈되었기에 ‘이전 산주후’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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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장수로 삼아 주둔케 하였는데, 이들은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도리어 안전한 곳으로 후퇴하였기에, 모두 적을 겁내는 나약한 죄로 처형되었다. 여선은 ‘무제(武帝)’새를 새겨 자립하여 그 백성을 속이고 망언(妄言)주 007
각주 007)
妄言 : 顔師古는 “망령되이 스스로를 크게 높임(妄自尊大也)”이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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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일삼았다. 주상은 횡해장군(橫海將軍) 한열(韓說) 주 008
각주 008)
橫海將軍 韓說 : 顔師古의 해석을 따라 한열이라 하였다(說讀曰悅). 『史記』 「衛將軍驃騎列傳」에 “將軍 韓說은 弓高侯의 庶孫이다. 교위로 대장군을 따라 공을 세워 용액후가 되었다. 주금률에 걸려 봉후를 잃었다. 원정 6년에 대조로 횡해장군이 되어 동월을 쳐 공을 세워 안도후가 되었다. 태초 3년에 유격장군이 되어 오원 밖에 열성에 주둔하였다. 광록훈이 되어 태자궁에서 고를 파내 위태자가 살해하였다(將軍韓說, 弓高侯庶孫也. 以校尉從大將軍有功, 爲龍額侯, 坐酎金失侯. 元鼎六年, 以待詔爲橫海將軍, 擊東越有功, 爲按道侯. 以太初三年爲游擊將軍, 屯於五原外列城. 爲光祿勳, 掘蠱太子宮, 衛太子殺之)”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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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 구장(句章) 주 009
각주 009)
句章 : 『索隱』에 인용된 鄭氏에 따르면 句章의 句는 음이 구(勾)이며 會稽의 縣이다. 『正義』에 따르면 句章故城은 越州 鄮縣 서쪽 100리에 있으며 漢의 縣이다. 현재의 浙江省 餘饒市 동남쪽 5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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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출격하도록 하였는데,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게 하였다. 누선장군 양복무림에서 출격하였고, 중위(中尉)주 010
각주 010)
中尉 : 수도의 治安을 담당하고 국가의 武庫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병졸을 이끌고 경성을 지키나 때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기도 한다. 九卿 중의 하나이며 秩은 中二千石이다. 후에 執金吾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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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온서(王溫舒) 주 011
각주 011)
王溫舒 : 漢武帝기 대표적인 酷吏이다. 陽陵(현재의 陝西省 高陵縣) 사람이며 관리가 되어서 治獄으로 廷史가 되었고, 張湯을 섬겨 御史로 승진하였다. 당시 도적을 감독하였는데, 매우 혹독하여 살상이 많았으며 廣平都尉로 승진한 뒤에는 廣平일대가 道不拾遺하여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河內太守에 임명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中尉로 승진을 거듭한다. 東越 원정에서 돌아와 비리가 적발되어 잠깐 좌천되었다가 中尉 소속 병졸을 돌려 通天臺 축성에 이용한 공로로 少府에 임명되고 다시 右內史까지 승진한다. 뒤에 그가 저지른 비리가 적발되어 三族에 처해져 자살하였다(『史記』 「酷吏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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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령에서 출격하였으며,주 012
각주 012)
「將相表」와 『漢書』「武帝本紀」에는 韓說과 王溫舒는 會稽에서 출격하고 楊僕은 預章에서 출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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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粵侯)는 과선장군과 하뢰장군이 되어 여사(如邪) 주 013
각주 013)
如邪 : 『史記』에는 若邪로 되어 있다. 현재의 浙江省 紹興 이남이다. 『正義』에 따르면 越州에 若耶山과 若耶溪가 있다. ‘若’은 ‘如’와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正義』는 若邪를 越州에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沈欽韓은 越州라면 너무 멀다고 생각하여 『輿地廣記』를 인용하여 新昌縣 서쪽에 鹽溪가 있어 일명 若邪溪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若邪라고 보았다(『考證』, 4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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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白沙) 주 014
각주 014)
白沙 : 현재의 江西省 鄱陽縣 서쪽에 있다. 『正義』는 預州에 白沙山이 있고 백사 동쪽이 이전의 閩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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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출격하였다. 원봉(元封) 원년 겨울(전110), 모두 동월로 들어갔다. 동월은 평소대로 군대를 일으켜 험한 곳에 의지하여 순북장군(徇北將軍)주 015
각주 015)
徇北將軍 : 순북은 ‘徇罰北方’, 즉 북방[漢]의 죄를 돌아다니며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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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무림(武林)을 지키도록 하였는데, 누선장군의 몇몇 교위를 괴멸시키고 그 장사(長史)주 016
각주 016)
長史 : 『史記』에는 長吏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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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죽였다. 누선장군은 전당(錢唐)주 017
각주 017)
錢唐 : 縣名. 顔師古는 “회계현(錢唐, 會稽縣也)”이라 하였다. 治所가 현재의 浙江省 杭州市 서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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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고(榬終古) 주 018
각주 018)
榬終古 : 『史記』에는 榬이 轅으로 되어 있다. 『正義』에 따르면 轅은 姓이고 終古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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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이끌고 순북장군을 베니, [원종고를] 어아후(語兒侯) 주 019
각주 019)
語兒侯 : 『史記』에는 禦로 되어 있다. 『漢書音義』에 따르면, 禦兒는 吳南亭이다. 『正義』는 ‘禦’자가 당시에는 ‘語’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語兒鄕은 蘇州 嘉興縣 남쪽 70리에 있는데, 官이 설치한 도로에 임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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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봉하였다. [누선장군이 거느린 한나라] 군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 각주 001)
    顔師古는 이 구절을 “군대가 국경 머리맡에 와 있으니 내려와 칠 것을 두려워함을 말한다(言兵在境首, 恐將來討之)”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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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吞漢將軍 : ‘한나라를 삼킬 장군’이라는 뜻이다. 漢의 ‘樓船將軍’이나 ‘橫海將軍’ 등과 같이 상설직이 아닌 당시 부여받은 임무에 따른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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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白沙 : 현재의 江西省 波陽縣 서쪽이다. 『太平寰宇記』 권107 饒州 鄱陽縣에 “白沙在府西. 水路百二十里, 沙白如雪. 因以爲名”이라 하여 모래가 눈처럼 희어서 地名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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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武林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武林은 豫章의 경계에 있다. 『索隱』은 또한 豫章 북쪽 200리는 鄱陽의 경계에 접해 있는데, 그 땅의 이름이 白沙이며, 작은 물줄기가 호수로 흘러들어가 이름을 白沙阬이라 한다. 그 동남쪽 80리에 武陽亭이 있고 亭의 동남쪽 30리의 땅 이름이 武林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白沙와 武林은 모두 閩越에서 京道로 들어가는 통로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武林은 현재의 江西省 餘干縣 동북 30리 武陵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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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5)
    大司農 張成 : 『漢書』 「百官公卿表」에는 大農令으로, 『史記』 「東越傳」에는 大農으로 되어 있다. 張成은 人名인데, 상세한 이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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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6)
    故山州侯 齒 : 『集解』에 인용된 徐廣에 따르면, 齒는 城陽 共王 劉喜의 아들이다. 武帝 元朔 4년(전125) 山州侯에 봉해졌으나 元鼎 5년에 酎金律에 걸려 삭탈되었기에 ‘이전 산주후’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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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7)
    妄言 : 顔師古는 “망령되이 스스로를 크게 높임(妄自尊大也)”이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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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8)
    橫海將軍 韓說 : 顔師古의 해석을 따라 한열이라 하였다(說讀曰悅). 『史記』 「衛將軍驃騎列傳」에 “將軍 韓說은 弓高侯의 庶孫이다. 교위로 대장군을 따라 공을 세워 용액후가 되었다. 주금률에 걸려 봉후를 잃었다. 원정 6년에 대조로 횡해장군이 되어 동월을 쳐 공을 세워 안도후가 되었다. 태초 3년에 유격장군이 되어 오원 밖에 열성에 주둔하였다. 광록훈이 되어 태자궁에서 고를 파내 위태자가 살해하였다(將軍韓說, 弓高侯庶孫也. 以校尉從大將軍有功, 爲龍額侯, 坐酎金失侯. 元鼎六年, 以待詔爲橫海將軍, 擊東越有功, 爲按道侯. 以太初三年爲游擊將軍, 屯於五原外列城. 爲光祿勳, 掘蠱太子宮, 衛太子殺之)”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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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9)
    句章 : 『索隱』에 인용된 鄭氏에 따르면 句章의 句는 음이 구(勾)이며 會稽의 縣이다. 『正義』에 따르면 句章故城은 越州 鄮縣 서쪽 100리에 있으며 漢의 縣이다. 현재의 浙江省 餘饒市 동남쪽 50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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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0)
    中尉 : 수도의 治安을 담당하고 국가의 武庫를 관리하는 관직이다. 병졸을 이끌고 경성을 지키나 때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기도 한다. 九卿 중의 하나이며 秩은 中二千石이다. 후에 執金吾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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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1)
    王溫舒 : 漢武帝기 대표적인 酷吏이다. 陽陵(현재의 陝西省 高陵縣) 사람이며 관리가 되어서 治獄으로 廷史가 되었고, 張湯을 섬겨 御史로 승진하였다. 당시 도적을 감독하였는데, 매우 혹독하여 살상이 많았으며 廣平都尉로 승진한 뒤에는 廣平일대가 道不拾遺하여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河內太守에 임명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中尉로 승진을 거듭한다. 東越 원정에서 돌아와 비리가 적발되어 잠깐 좌천되었다가 中尉 소속 병졸을 돌려 通天臺 축성에 이용한 공로로 少府에 임명되고 다시 右內史까지 승진한다. 뒤에 그가 저지른 비리가 적발되어 三族에 처해져 자살하였다(『史記』 「酷吏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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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2)
    「將相表」와 『漢書』「武帝本紀」에는 韓說과 王溫舒는 會稽에서 출격하고 楊僕은 預章에서 출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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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3)
    如邪 : 『史記』에는 若邪로 되어 있다. 현재의 浙江省 紹興 이남이다. 『正義』에 따르면 越州에 若耶山과 若耶溪가 있다. ‘若’은 ‘如’와 같은 의미이다. 이처럼 『正義』는 若邪를 越州에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沈欽韓은 越州라면 너무 멀다고 생각하여 『輿地廣記』를 인용하여 新昌縣 서쪽에 鹽溪가 있어 일명 若邪溪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若邪라고 보았다(『考證』, 46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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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4)
    白沙 : 현재의 江西省 鄱陽縣 서쪽에 있다. 『正義』는 預州에 白沙山이 있고 백사 동쪽이 이전의 閩州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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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5)
    徇北將軍 : 순북은 ‘徇罰北方’, 즉 북방[漢]의 죄를 돌아다니며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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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6)
    長史 : 『史記』에는 長吏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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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7)
    錢唐 : 縣名. 顔師古는 “회계현(錢唐, 會稽縣也)”이라 하였다. 治所가 현재의 浙江省 杭州市 서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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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8)
    榬終古 : 『史記』에는 榬이 轅으로 되어 있다. 『正義』에 따르면 轅은 姓이고 終古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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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19)
    語兒侯 : 『史記』에는 禦로 되어 있다. 『漢書音義』에 따르면, 禦兒는 吳南亭이다. 『正義』는 ‘禦’자가 당시에는 ‘語’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語兒鄕은 蘇州 嘉興縣 남쪽 70리에 있는데, 官이 설치한 도로에 임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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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여선(餘善), 추력(騶力), 장성(張成), 산주후(山州侯), 치(齒), 여선, 한열(韓說), 양복, 왕온서(王溫舒), 원종고(榬終古), 원종고, 어아후(語兒侯)
지명
한나라, 한나라, 백사(白沙), 무림(武林), 매령(梅嶺), , 한나라, 구장(句章), 무림, 매령, 여사(如邪), 백사(白沙), 무림(武林),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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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한열(韓說) 등을 보내 동월과 전투를 벌임 자료번호 : jo.k_0002_0095_0030_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