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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안악3호분

安岳3號墳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관련자료
  • 원소장처
    황해남도 안악군 룡순면 유순리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다. 재령평야 북편 오국리 벌판 한가운데 솟은 산꼭대기 서편에 있다.
유적개관
1949년 4월에 북한의 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에 의해 1차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조사기록과 자료가 소실되어 1957년 5월에 북한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주도로 2차 조사가 진행되었다. 무덤의 주축 방향은 남향이며, 전실과 좌우에 측실이 있는 중실, 회랑, 후실로 이루어진 복실묘이다. 봉분d은 방대형으로, 바닥 부분의 경우 길이 30m, 너비 33m이며, 높이는 약 7m이다. 문 입구에 너비 2.43m, 높이 75cm 내외의 두 개의 돌문이 있다. 전실과 중실, 좌우 측실, 현실, 회랑의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2.17*2.12*3.48m, 4.88*2.73*3.47m, 1.22*2.99*2.97m, 1.7*3.13*2.75m, 3.8*3.32*2.8m, 10.13*0.87*2.5m이다. 매장주체부는 언덕을 일부 깎아 내고 만든 반지하에 석회암으로 축조하였다. 회랑 천장은 평행고임, 다른 부분의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이다. 회랑의 입구에 2개의 돌기둥을 세웠고, 후실 앞부분에 3개의 돌기둥을 세웠다. 전실 서벽 북쪽 벽면에 7행 68자의 묵서명문이 있으며, 벽화 장면마다 사람의 직명이나 장면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벽화는 돌벽 위에 직접 그렸으며, 주제는 생활 풍속이다. 안악3호분은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평양과 안악 지역의 고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다. 안악 3호분은 무덤주인이 연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장군 동수인지, 아니면 고구려의 미천왕이나 고국원왕인지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또한 묵서명의 주인공인 동수가 안악3호분의 주인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안악3호분에서 가장 대표적인 벽화는 후실의 동쪽과 북족에 걸쳐 10.5m의 길이 회랑에 그려진 25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규모 행렬도이다. 중실에는 의장기수와 부월수, 고취악대, 수박회 장면이, 동벽 측실 내부에는 방앗간, 우물, 마굿간, 외양간, 차고, 고깃간, 부엌 등 가내시설과 남녀 시종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전실의 서벽에는 두 사람의 호위 무관이, 남쪽의 장하독 곁에는 7행 68자의 묵서명이 쓰여 있다. 서쪽 측실 내부는 무덤 주인과 시종들, 부인과 시녀들, 호위무관 등이 그려져 있다. 무덤 주인의 얼굴은 세 번 이상 고쳐 그렸는데, 검은 내관 위에 하얀 덧관을 썼고, 오른손에는 깃털부채를 들었다. 후실에는 악사와 무용수가 그려져 있다. 안악3호분의 천장석에는 해와 달, 별자리 및 연꽃 등이 그려져 있다.
출토유물
* 토기편, 관정 다수, 철창, 30여점의 인골
참고문헌
「안악제3호분발굴보고」, 1958
해설
유순리 마을의 서북쪽 구릉 정상부에 있다. 석실봉토벽화분으로 남북 33m, 동서 30m, 높이 6m이다. 무덤은 묘도와 연실, 앞방[전실(前室)]과 앞방 좌우 측실, 널방[현실(玄室)]과 널방을 ㄱ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방[전실(前室)]과 널방[현실(玄室)], 회랑은 통로로 연결된 독립 공간이 아니라 기둥과 벽으로 구성되어 있어 두 칸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실은 남북 2.12m, 동서 2.17m, 높이 2.63m이고 평행삼각고임 천장이다. 앞방과 연실이 연결되는 부분은 양쪽에 사각기둥을 세워 구분하였다. 앞방은 장방형으로 동서 488cm, 남북 273cm, 높이 262cm이고 평행삼각고임천장이다. 앞방과 연실 사이에는 양측 벽에 사각기둥을 세워 구획하였다. 앞방의 동서에는 측실이 있는데 서측실은 남북이 긴 장방형(長方形)으로 남북 312cm~323cm, 동서 170cm, 높이 275cm이며, 동측실 역시 남북이 긴 장방형으로 남북 299cm, 동서 122~127cm, 높이 297cm이다. 두 측실 모두 평행삼각고임천장이다.
널방[현실(玄室)]과 앞방[전실(前室)] 사이에는 기둥을 세워 구획하였다. 널방[현실(玄室)]은 방형으로 동서 380cm, 남북 332cm, 높이 280cm이다. 천장은 평행삼각고임천장이고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북벽에는 60cm가량의 벽을 쌓고 그 위에 사각 기둥 3개를 세웠다. 회랑은 널방[현실(玄室)] 동벽부터 북벽을 ㄱ자 모양으로 두르고 있다. 꺾이는 부분에 사각기둥을 세워두었다. 부장품(副葬品)은 토제 접시류와 철제 창, 관못 등이 수습되었다.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도이다. 연실의 좌우 벽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의장대열이 그려져 있고, 앞방[전실(前室)] 입구의 동서 양쪽에는 의장대열과 악대가 각각 상하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서측실 입구 양쪽에는 장하독(帳下督)이 서로 마주보고 그려졌다. 각 인물의 머리 위로 명문(銘文)이 적혀 있었으나 현재는 왼쪽 인물만 남아 있다. 남주인공은 서측실 서벽에, 여주인공은 남벽에 그려져 있다. 북벽에는 벽화가 확인되지 않는다. 동측실 입구 오른쪽 벽에는 수박희(手搏戱)와 부월수(斧鉞手) 대열이 상하 두 단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동측실 내부는 사면이 방앗간, 우물, 부엌, 육고, 차고, 외양간, 마굿간 등이 그려져 있다. 동측실을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회랑의 벽화가 시작되는데 200명 이상이 등장하는 행렬도이다. 마차를 탄 묘주는 행렬의 1/3 지점에 있고 바로 앞에는 검은 깃발에 붉은 색으로 성상번(聖上幡)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본래 북쪽회랑까지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에는 동벽에만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널방[현실(玄室)]의 도엽에는 세 사람의 악대와 춤을 추는 서역인(西域人)이 남아 있다.
이 안악 3호분의 경우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는데, 크게 동수(冬壽)로 보는 입장과 고국원왕(故國原王)으로 보는 입장으로 나뉜다. 주로 북한에서 고국원왕설을 주장하고, 남한과 일본, 중국에서는 동수설을 지지하고 있다. 고국원왕설은 무덤의 규모와 성상번이라는 묵서, 행렬의 구성 및 복식 등을 근거로 하고, 동수설은 묵서의 내용, 당시의 상황, 집안의 왕릉급 적석총과의 선후관계 등을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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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악3호분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60_006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