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동외자고분군

東子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미상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현 남전자진 동외자촌(遼寧省 本溪縣 南甸子鎭 東崴子村)/요녕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남전진(中國 遼寧省 本溪市 本溪滿族自治縣 南甸鎭)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본계현 남전자진 마성자촌 동외자에 위치
유적개관
350㎡에 석실분이 분포한다. 판석으로 석벽을 세웠고 묘도는 모두 남단에 위치한다. 가장 큰 석실분은 길이 9.2m, 너비 5.8m, 높이 1m이다.
유물개관
* 도금이배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본계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인 소시진에서 동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 남전진(南甸鎭)에서 발견된 무덤군이다.
1987년 관음각(觀音閣) 댐 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내 문물조사를 실시하면서 남전진에서 고분군을 발견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약 350m² 면적에서 모두 9기의 고분들이 발견되었는데, 발견당시 훼손이 심하고 돌무지와 봉토, 무덤의 구분이 불명확하였다. 때문에 9기 모두를 봉토석실묘로 보기도 하고, 이 중 1기의 무덤을 적석묘(積石墓)로 파악하여 보고하기도 하였다.
석실묘는 석실을 돌을 쌓아올린 방식과, 판석을 쌓은 방식 두 종류가 확인되며, 두 개의 석실(묘실)을 둔 쌍실 형태도 확인되었다.
가장 큰 무덤인 1호 고분은 규모가 9.2m×5.8m로 대형급 고분에 속하며, 이 무덤에서 금제 귀걸이가 함께 출토되었는데, 평양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다.
무덤의 조영양식과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고구려 고분이 거의 확실하고, 특히 1호 고분의 경우 규모와 금귀걸이가 출토된 점등을 볼 때, 고구려의 지방관리 혹은 지역의 수장계층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8년 무렵 부여(夫餘)로부터 남하한 주몽이 환인 일대에서 고구려를 개국한 이후부터 줄곧, 고구려는 요동의 진출을 두고 중국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고구려가 요하 유역까지 진출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38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현도군과 요동군을 함락한 바가 있으나 이는 5개월에 그친 일시적인 일이고, 대체로 광개토왕대에 들어 402년 숙군성 공격, 404년 요서 공격 등을 통해 고구려의 요하 유역진출이 가능해 진 것으로 파악된다.
본계 지역은 요동평야와 동부산악지역의 경계로서, 본계에 고구려 유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고구려가 요동으로 진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계는 고구려의 요동진출의 첫 교두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요동 진출로는, 반대로 중국세력의 침입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찍부터 고구려는 요동에서 국도(國都)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에 방어시설을 설치하였음이 확인된다. 또 이 시설들은 지방지배의 거점으로서의 행정적 역할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동외자고분군은 고구려의 요동 진출과 지방지배의 일면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된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동외자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