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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인 4등관 류트샤가 도쿄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보내는 1917년 4월 20일자 № 8 보고서의 사본

Копия донесения Российского Генерального Консула в Сеуле Д. С. С. Лютша на имя Российского Посла в Токио от 20-го апреля 1917 года, за № 8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류트샤
  • 번역·감수
    김선안, 이원용, 조재곤, 하원호
  • 발송일
    1917년 4월 20일(1917년 4월 20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192,лл.31-32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외교(국제문제)/사회운동
  • 세부분류
    외국인/이민(국외거주)/독립운동
  • 주제어
    독립운동, 안종석
  • 색인어
    안종석, 유인석, 이범윤, 오주혁, 블라디보스토크, 기린, 기부금, 카자크 초소, 간도, 류트샤
  • 형태사항
    4  , 타이핑  , 러시아어 
2개월 전 일본 국경 초소는 유명한 빨치산부대 대장이자 조선 현 정권의 심각한 적인 조선인 안종석주 001
각주 001)
안종석(安鍾奭). 창의소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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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행방을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발견 후 곧바로 체포되어, 붙잡힌 곳에서 가장 가까운 청진의 사법 당국에 인도되었습니다.
안종석은 신념이 강한 일본의 적들 중 하나로서, 말과 행동으로 자기 조국 내에 민족 통치 회복을 촉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08년에는 자국 영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확고해진 것을 보고 그는 임시로 조선을 떠나 있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해, 일본 정권에 불만을 가져 블라디보스토크에 자리 잡고 있던 동포들 무리에 합류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조선 학교 교사직을 받아들인 동시에 비밀 정치 단체의 활동 요원이 되었습니다. 이 단체에는 예전의 그의 동료이자 조선의 애국지사 들이 있었는데, 빨치산부대 대장 유인석, 러일전쟁 당시 우리 군대에 굉장한 도움을 주었던 옛 조선 관리 이범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의 피난민들 사이에서 대단한 영향력과 권위를 가졌던 선동가 오주혁주 002
각주 002)
오주혁(吳周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성명회를 조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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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조선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곧바로 안종석을 밀사 내지 척후병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들의 위임을 받은 안종석은 원산에 다녀왔고, 토착 주민들의 분위기는 국내에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그 어떤 적대적 발언에도 우호적이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왔을 때 안종석은 자기네 단체가 우리 당국의 지시로 해체되고, 이 단체의 대장이던 몇몇 자기 동료들이 체포되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청국 영토의 국경 지역으로 떠나, 조선 독립 회복 투쟁에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5년 동안 그는 여기저기 떠돌면서 자신의 동포들 사이에서 반일 선동을 하였고, 지방 정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14년 그는 간도 지방에 자신의 활동을 집중시켰는데, 여기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동료들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도 그는 역시 반일 비밀 정치 단체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동지들의 위임에 따라 그는 선동을 목적으로 길림에 다녀왔고, 자신의 몇몇 지인들에게 막대한 기부금을 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부금으로 그는 작은 부대를 집합시켜 무장시킨 후 조선 국경 지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준비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넉넉하게 들어온 기부금으로 안종석은 두만강 근처에 자기 부대에 가장 필요한 숙소들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빨치산부대들의 등장은 초반엔 다소 성공적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자기네 국경 초소들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종석 부대는 아마도 오해로 우리 영토에 침입했던 것 같은데, 부대원들이 도전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자 공격을 당해 1915년 10월 우리의 한 카자크 초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이 부대를 통틀어 남은 사람이라곤 30명에 불과했는데, 이들은 가까이 있는 조선의 마을들로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부대의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다툼이 시작되었고, 안종석의 동지들 중 한 명은 무기를 탈취해 혼춘(琿春)의 믿을 만한 조선 애국지사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동료들에게 버림 받은 안종석 자신은 함경도 지방의 국경 지대를 떠돌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자기 동지들에게 배신당하고 말았습니다. 부대의 일부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헌병 초소에 임명하는 일을 하는 일본인들에게 투항했습니다.
안종석이 마지막 빨치산부대장은 아니지만, 빨치산부대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일본인들에게는 어떤 위험도 되지 못합니다. 일본 당국이 간도에서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요소와 어떻게 성공적으로 싸웠는지, 많은 타협하지 않은 조선인들이 우리 해안 지역에서 어디로 건너갔는지에 대해 공사관에 알려드리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간도도 이 조선인들에게는 곧 믿지 못할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 일본 세력은 눈에 띄게 강해졌지만 지방 정부는 이 도망자들을 보호해 줄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현 주인에게 복종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들은 간도의 익숙한 장소들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깊은 존경을 담아......

  • 각주 001)
    안종석(安鍾奭). 창의소 사령관. 바로가기
  • 각주 002)
    오주혁(吳周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성명회를 조직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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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인 4등관 류트샤가 도쿄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보내는 1917년 4월 20일자 № 8 보고서의 사본 자료번호 : kifr.d_0004_0210_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