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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베베르가 로바노프-로스톱스키 공작에게 보낸 보고서

Донесение К.Вебера Князю А.Б. Лобановц-Ростовскому
  • 구분
    보고서
  • 저필자
    베베르
  • 수신자
    로바노프-로스톱스키
  • 발송일
    1895년 8월 8일(1895년 8월 8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6,лл.34-36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국방·군사/외교정책/국제관계
  • 주제어
    일본이 대조선정책, 친일파
  • 색인어
    이노우에, 김홍집, 박영효, 대원군, 베베르
  • 형태사항
    6  , 타이핑  , 러시아어 
№ 158.
서울, 1895년 8월 8일.
 
알렉세이 보리소비치주 001
번역주 001)
알렉세이 보리소비치 로바노프-로스톱스키(Алексей Борисович Лобанов-Ростовский). 러시아 외무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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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각하께,
이노우에 백작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일본에서는 조선 문제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회의가 수차례 있었고 제가 당년 6월 28일자 비밀전문으로 각하께 보고 드렸던 바와 같이 일본인들이 조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유럽의 갈등이 종식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정말로 일본공사가 귀국할 때(7월 8일) 쯤에는 일본의 공격적 행동이 예정되어있다는 상당히 불안한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이 소문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이노우에 백작은 지난 7월 13일 처음으로 국왕에게 보고를 하던 자리에서 완전히 반대로 평화로운 기조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일본의 대조선정책, 즉 국가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대원군에게 섭정을 시키고 현재는 이미 추방당한 박영효에게 중요한 행정직을 맡기려고 했던 시도들이 실수였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백작이 귀국한 후 한 달간의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활동이 그의 말을 전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 내내 그는 상당히 조용하게 활동했고 내부행정과 관련된, 바로 현재의 총리대신 박정양을 일본파인 김홍집으로 교체하는 한 가지 조치만을 주장했을 뿐입니다. 이 노력은 어쨌든 박정양이 자기 지위를 보존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새로운 온건정책은 청·일 간 갈등의 마지막 반전 하에서 러시아가 차지한 지위의 위용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곳은 몇 달 전 나라를 괴롭혔던 긴장된 관계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고 있으며 국왕께서는 비록 아직은 공개적으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기를 피하고 계시지만 커다란 위엄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개혁이 더 합리적인 행로로 갈 것이며 점차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깊은 존경과 충심으로 각하의 충복 베베르가 올립니다.

  • 번역주 001)
    알렉세이 보리소비치 로바노프-로스톱스키(Алексей Борисович Лобанов-Ростовский). 러시아 외무대신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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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르가 로바노프-로스톱스키 공작에게 보낸 보고서 자료번호 : kifr.d_0004_019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