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사(侍御史) 이범(李範)의 상언과 태종의 조서
지안주(知安州)주 001 시어사(侍御史)주 002 이범(李範)주 003이 상언하기를, “옛 전중승(殿中丞)주 004 통판주사(通判州事)주 005 김행성은 본래 고려인인데 빈공으로 진사에 응시하여 급제했습니다. 고려국왕(高麗國王)이 표를 올려 돌려보내줄 것을 청했는데 김행성은 스스로 중조(中朝: 송)에서 처음 벼슬했으므로 생각 끝에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알려왔습니다. 부모가 연로하고 해외에 있어 아침저녁으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녹봉으로 봉양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여 화공으로 하여금 그 초상을 그리게 하여 정침(正寢)에 두고 김행성과 처가 옆방에 거처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살피고 밥상도 올리기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김행성이 병이 나서 위독해지니 신과 주관 몇 사람을 불러 침실 안으로 갔습니다. (김행성이) 울면서 말하기를, ‘외국인이 중조에 입사하여 5품관이 되어 군정을 보좌했는데 병들어 죽게 되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눈을 감고 죽어도 여한이 있습니다. 두 아들 김종민(金宗敏)주 006·김종눌(金宗訥)주 007은 모두 어리고 집은 몹시 가난하며 의탁할 수 있는 다른 친척도 없으니 구렁텅이에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김행성이 죽자 그 처는 재가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신발을 만들어 생활했는데 신이 그것을 마음속으로 애석해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서를 내려 김종민을 태묘재랑(太廟齋郎)주 008으로 삼고 예부(禮部)는 즉시 그를 거두어 임명하도록 하고는, 안주로 하여금 매월 3천전과 쌀 5석을 그 집에 지급하고 장리(長吏)주 009로 하여금 때때로 안부를 살피도록 하여 잃는 바가 없게 했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 각주 008)
- 각주 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