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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토기로 본 축조 시기

1) 토기로 본 축조 시기

크라스키노 성터 최상층의 건축 시기 추정과 관련하여 특히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거란계 토기이다. 성 북서쪽 부근의 우물 내부에서 발굴된 몇 개의 陶器와 기와는 심하게 그을린 흔적이 있다. 그 중 하나의 병은 목 부분에 2개의 돌대가 있고, 또한 몸통의 아래 부분에는 원통형의 스템프에 의해 9열의 비스듬하게 새겨진 선이 돌려져 있다. 이 병은 형태나 장식에서 926년에 발해를 정복한 거란의 陶器와 대단히 비슷하다고 한다.
우물로부터의 출토 유물에 의해, 보고자는 이 城의 上部 造營層이 10세기의 초반, 즉 발해가 존재한 최종 단계이고, 926년 거란의 속국인 동란국(東丹國)이 건국된 이후, 잠시 사이에 이 성은 거란의 지배 하에 놓여져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V.I. Voldin·Gelman·Ivliev·Nikitin, 淸水信行 譯, 2003, 「クラスキノ土城 4年間の調査集成」, 위의 책, 52~54쪽.도기 등이 우물 덮개 돌 위에 있고, 강한 불을 받은 흔적이 있다는 것은 이 유물들이 성이 폐기될 당시의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성곽 시설의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 하나는 적의 침입을 받아 퇴각 시에도 성 내의 시설을 불태운다는 점이다. 이 경우 성 내의 우물에 각종 물건을 집어넣어 적이 성내로 들어와서 사용하지 못 하게 하고, 우물 내의 물건을 불태우고 심지어 독극물을 넣기도 한다(『通典』권152 兵5 附守拒法 참조).
2002년 조사에서도 雉 남측의 발굴구에서 어느 정도 복원 가능한 토기가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몸통이 긴 대형의 壺로 크라스키노성 북서부 우물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에 비해 약간 늦은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田村晃一, 2003, 「クラスキノ土城の調査とその意義」, 앞의 책,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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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로 본 축조 시기 자료번호 : kr.d_0003_0030_001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