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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토사숙녜(土師宿禰; 하지노스쿠네)

#천손(天孫)
토사숙녜(土師宿禰; 하지노스쿠네)
 천수일명(天穗日命; 아마노호히노미코토)의 14세손인 야견숙녜(野見宿禰; 노미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주석】
1. 토사숙녜(土師宿禰)
토사(土師)라는 씨명은 토사기(土師器; 하지키)라는 토기 종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토사기는 고분(古墳) 주변에 배치하는 식륜(埴輪)을 비롯하여 각종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제작하는 집단을 토사부(土師部) 혹은 토부(土部)라고 하였으므로, 토사숙녜는 토사부를 통솔하는 반조씨족이었을 것이다.
토사숙녜의 원래 성은 연(連)이었다. 『일본서기』 천무(天武) 13년(684) 12월 기묘조에 토사련에게 숙녜라는 성을 내렸다.
토사숙녜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토사숙녜백지(土師宿禰百枝, 『日本後紀』 弘仁 2년 3월 병신조)가 있다. 백지(百枝)는 산성국(山城國) 사람으로 정6위상이라는 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관원조신(菅原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日本後紀』弘仁 2년 3월 병신조). 그는 아마도 토사숙녜의 본계(本系)를 제출한 씨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산성국 신별에 관원조신라고 기록되지 않은 것은, 관원조신이라는 씨성을 받은 홍인(弘仁) 2년(811) 이전에 「본계장」 을 제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산성국(山城國) 애탕군(愛宕郡) 대야향(大野鄕)에는 토사련(土師連)이 보인다. 토사련동인(土師連東人, 天平 20년 4월 「土師連東人手實」, 『대일본고문서』 10-154), 토사련만려(土師連万呂, 天平 20년 4월 25일자 「寫書所解」, 『대일본고문서』 3-80)가 있다. 그런데 하내국(河內國) 지기군(志紀郡)의 토사련지모지(土師連智毛智)는 외종5위하라는 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769년에 숙녜라는 성을 받았다(『속일본기』 神護景雲 3년 12월 무오조). 그러므로 산성국 애탕군 대야향에 거주하던 토사련동인의 후손도 숙녜라는 성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본조의 토사숙녜씨가 숙녜라는 성을 갖게 된 것도 683년이 아니고 769년이었을 수 있다.
산성국 이외에 우경(右京) 화천국(和泉國) 하내국(河內國)에도 토사숙녜씨가 있었다. 각각 우경 신별(하) 「토사숙녜」 조(456), 화천국 신별 「토사숙녜」 조(723) 참조.
2. 천수일명(天穗日命)
천수일명에 대해서는, 좌경 신별(중) 「출운숙녜(出雲宿禰)」 조(393) 천수일명 참조.
3. 야견숙녜(野見宿禰)
토사씨(土師氏)의 조상으로 『일본서기』 등에 보인다. 아타승(阿陀勝), 내일전유수명(來日田維穗命)의 아버지이다. 그는 수인(垂仁)의 황후 일엽초원명(日葉酢媛命)이 죽었을 때 토부(土部)를 이끌고 진흙으로 사람과 말의 형상을 만들어 천황에게 바쳐 살아 있는 사람과 말을 순장하는 대신 이들 기물을 사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기물들을 식륜(埴輪) 혹은 입물(立物)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야견숙녜의 이름도 토부신(土部臣)으로 바꾸었고 토부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日本書紀』 垂仁 32년 7월 기묘조).
이와 유사한 전승이 『속일본기(續日本紀)』, 『관가어전기(菅家御傳記)』 에 보인다. 『파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읍보군(揖保郡) 상강리(上岡里) 입야(立野)조에는 출운(出雲)을 왕래하던 야견숙녜가 이곳에서 병들어 죽자 출운 지역 사람들이 와서 강변의 자갈 위에 묘를 만들고 입야(立野)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속일본기』 연력(延曆) 10년(791) 9월 정축조에 근위장감(近衛將監) 정6위하 출운신조인(出雲臣祖人)이 자신들이 천수일명(天穗日命)에서 나왔고, 그 14세손이 야견숙녜이며, 그 후손이 토사씨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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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숙녜(土師宿禰; 하지노스쿠네)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40_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