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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우즈마사노키미노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공만왕(功滿王)의 3세손 진주공(秦酒公)의 후손이다.
 
【주석】
1. 진기촌(秦忌寸)
진(秦)의 훈독은 ‘하타’이다. 진기촌씨(秦忌寸氏)는 중국 진 시황제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그 계보관계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웅략조(雄略朝) 때에 진주공(秦酒公)이 많은 견직물을 헌상했기 때문에 우즈마사[太秦]라는 씨족의 이름을 받았다는 경위를 밝히고 있고, 천평(天平) 20년(748)에는 이미길(伊美吉, 忌寸)의 성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타라는 말에 대해 『신찬성씨록』 좌경 제번(상)의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조에 “진왕이 바친 실, 솜, 명주, 비단은 짐이 입으니 부드럽고 피부에 따듯해서 파다(波多)를 성으로 하사하였다”라 하고, 『고어습유』 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온다. 또 범어로 ‘pata’는 견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명주를 짜는 사람을 복부(服部), 진씨(秦氏)라 칭하고 명주를 짜는 도구를 하타라고 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3년(836) 윤5월 임오조에는 진기촌(秦忌寸) 일족인 진기촌안마려(秦忌寸安麻呂), 진기촌가계(秦忌寸家繼)가 조원숙녜(朝原宿禰)로 개성하고 있다.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7년(865) 12월 정사조에 진기촌선자(秦忌寸善子)는 이통조신(伊統朝臣)의 씨성을 받고 있다.
진기촌씨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상) 「진기촌」 조(742), 하내국 제번 「진숙녜」 조(999)참조.
2.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태진공숙녜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 조(740) 참조.
3. 공만왕(功滿王)
공만왕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 조(740) 공만왕 참조.
4. 진주공(秦酒公)
진주공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 조(7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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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2_0020_0030_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