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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조사 개요 및 유적지 현황

  • 편자
    장석호

Ⅱ. 조사 개요 및 유적지 현황

1. 조사 목적 및 당위성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과 몽골국의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소장 D. 체벤도르지)는 2007년도에 고비 알타이 아이막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 시대 암각화를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합의하고 협정서를 체결하였다. 이 협정서에 의거하여 양 기관은 2007년 7월 15일부터 8월 23일까지 몽골의 서부 고비 알타이 아이막(행정단위 ‘도’에 해당)과 호브드 아이막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 및 고대 암각화와 사슴돌 등을 조사하였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그동안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이 지역의 선사 시대 암각화를 조사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 선사 및 고대 문화의 계통성을 연구하는데 기초가 되는 자료를 파악하고 수집하는데 있었다. 한국의 선사 및 고대 문화는 중국과 내륙아시아(Inner Asia)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 한반도의 서쪽지방으로부터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었지만, 고대와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몽골을 중심으로 한 북방 수렵 및 유목민 문화와의 친연성이 한층 농후해지기 때문이다.
[사진 1] 성소(하난하드 암각화)
 그것을 잘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 초기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 그려진 여러 형상들이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는 소위 ‘수렵도’, ‘기마행렬도’, ‘개마 무사’ 그리고 ‘마차도’ 등등이 살펴지는데, 이들은 북방 지역의 수렵 및 유목민 미술의 핵심적인 제재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시대의 변화와 제작 주체의 교체에 따른 양식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알타이 산맥 일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고대 유목민 제국에 이르기까지의 선사 및 고대 암각화들이 풍부히 남아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 선사 및 고대문화의 계통성 연구, 즉 우리와 북방 유목문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위하여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이 지역의 암각화를 조사한 것이다.
[사진 2] 수렵도(무용총)
2. 조사 개요
 협정서에 의거하여 양 측은 공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한국 측에서는 장석호와 박민량(계명문화대)이 참여하였고, 몽골 측에서는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의 소장인 D. 체벤도르지, M. 쳉겔(동 연구소 연구원), G. 바상도르지(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 향토 연구자) 등이 참여하였다. 그 밖에도 조사 보조원으로 바트 오르쉬흐(알타이 박물관 연구원), B. 맥마르자브(학생), B. 체체그(학생) 등이 참여하여 조사를 도왔다.
[사진 3] 고비 알타이 아이막으로 가는 길
 조사단의 각 구성원이 맡은 역할은 다음과 같다. 조사 지역 선정 및 일정 수립을 비롯한 전체적인 지도는 D. 체벤도르지 소장이 하였으며, 현장 소개와 안내는 바양올 솜 출신의 향토 연구자인 G. 바상도르지가 하였다. 현장 조사는 장석호와 M. 쳉겔이 주도하였다. 장석호, 박민량 그리고 M. 쳉겔은 사진 촬영과 형상 채록을 하였으며, 나머지 조사 보조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사 기간은 2007년 7월 15일~8월 23일까지 40일간이었다. 장석호 등은 7월 15일 몽골에 입국하여 곧장 조사와 관련한 실무 협의를 하였으며, M. 쳉겔 등은 7월 17일 출발하기까지 조사 장비를 구입하는 등의 준비를 하였다. 7월 17일 오후에 울란바타르를 출발하여 조사 예정지인 고비 알타이 아이막으로 향하였다.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행정도시 알타이 시까지는 약 1200여 km에 달하는데, 도중에 노숙을 하면서 달려 7월 19일 밤에 알타이 시에 도착하였다[지도 참조]. 7월 20일 오전에는 알타이 시내에 있는 박물관을 견학한 후, 박물관 연구원인 바트 오르쉬흐를 조사대에 합류시켜 오후 늦게 조사 예정지인 바양 올 솜의 하난하드에 도착하였다.
 바양 올 솜은 알타이 시로부터 서북쪽으로 14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암각화 유적지는 솜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15km 지점에 집중되어 있으며, 7월 21일부터 8월 1일까지 12일 간 이 지역의 암각화를 모두 조사하였다. 8월 2일에는 바양 올 솜에서 다시 알타이 시로 이동하였으며, 그곳에서 이동과 조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충하는 등의 일을 한 후, 8월 3일 호브드 아이막으로 이동하였다. 호브드 아이막에서는 8월 3일부터 9일까지 7일간 체류를 하면서 망한 솜 내의 ‘호이트 쳉헤르’ 동굴 벽화와 호브드 시 근교의 ‘바타르 하이르항’, ‘찬드만 하르 우주르’, 에르뎅 부렝 솜의 ‘조스틴 하드’ 등의 암각화를 조사하고 채록하였다.
[사진 4] 영양 등(호이트 쳉헤르 동굴, 호브드 아이막, 구석기 시대)
 그리고 다시 고비 알타이, 바양홍고르, 아르항가이, 볼간 등의 아이막을 거쳐 울란바타르로 되돌아 왔다. 울란바타르로 되돌아오는 도중에도 아르항가이 아이막의 이흐 타미르솜 ‘차츠인 에레크’, 볼간 아이막 다쉰칠렌 솜의 ‘한가이다이’ 등지에 분포하고 있는 사슴돌과 암각화 유적지 등을 답사할 수 있었으며, 이 때 몽골 및 제3국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몇몇 발굴 현장을 방문하여 선사 및 고대와 관련한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볼간 아이막에서는 몽골과 러시아의 학자들이 펼치고 있는 친 톨고이 유적지를 참관하였다.
[사진 5] 하난하드 유적지 전경
 8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간은 조사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 및 도면 등을 날짜 및 유적지 별로 정리하였으며, 사진 자료를 목록화 하고 또 이후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서로 교환하였다. 동시에 채록한 도면 자료들은 모두 수합하여 한국으로의 반입 준비를 하였다. 물론 이때 반입한 도면은 이후 반투명 투사지에 옮겨 그린 후 축소 복사, 스캔 등의 과정을 거쳐 2D 파일화 작업을 하였으며, 그것을 양 기관이 각각 1부씩 공유하고 있다. 이 자료집 속의 도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것들이다.
 총 40일 동안의 조사 기간 중 몽골에로의 입국과 귀국에 2일이 소요되었다. 또한 현장 조사는 장소를 바꿔가며 30일 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이동한 거리는 총 연장 5000여 km에 이른다. 조사를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8일간은 울란바타르에서 양 기관이 공동으로 수행한 조사 결과물을 목록화 하고 분류하여 정리하였으며, 이 기간 중 2007년도 여름에 몽골에서 이루어진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기획된 고고학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여 주제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주 022
각주 022)
독일 본대학교 고고학연구소와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몽골의 고고학’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여 조사내용을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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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조사는 조사 범위 설정, 조사 범위 내의 구획 설정, 번호 붙이기, 사진 촬영 그리고 형상 채록 등의 순서에 의거하여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순서에 따라 우리들은 하난하드 바위그림 유적지를 모두 14개의 구역으로 나누었으며[사진 5], 각 구역 별로 그림이 그려진 암면에 1-1, 1-2 등과 같은 번호를 붙였고, 이를 통하여 그림의 개체 수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런 다음 사진 촬영을 하였는데, 그 목적은 자료 확보와 현상 소개 그리고 자료집 발간 등에 있었다.
 형상 채록은 폴리에틸렌을 통한 옮겨 그리기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그것은 물론 암각화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또 섬세한 도면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채택한 방법이었다.주 023
각주 023)
동북아역사재단(2008),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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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브드 아이막이라든가 되돌아오는 길에 목격하였던 형상들을 제외하고,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에서만 우리들은 총 221개 암면에 그려진 형상들을 채록하였다. 암면 가운데는 형상이 하나만 그려진 것에서부터 수십 개가 그려진 것까지 암면과 그림의 규모, 형상의 크기는 달랐으며, 그 내용도 다양하였다. 물론 바위의 크기와 암면 가운데서 그림의 위치 등도 모두 달랐으며, 그런 까닭에 어떤 것들은 채록하기가 몹시 까다로웠고 또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
[사진 6] 조사 광경(하난하드 성소)
 현장 조사 과정에서 언제나 겪는 일이지만, 사진 촬영과 형상 채록을 하는 일에는 특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수천수만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햇볕으로 검게 그을린 바위들은 고비 알타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부옇게 번들거렸으며, 또 형상의 생생한 윤곽을 살필 수 있는 세부 타격 흔적들이 햇볕의 각도에 따라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였다. 뙤약볕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바위와 거기서부터 솟아오르는 복사열 그리고 폴리에틸렌에 반사된 반사광 등은 조사자들을 지치게 하였다.
 우리 조사단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은 형태의 세세한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으며, 그런 만큼 상황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촬영하고 또 형상을 채록하여야 했다. 더욱이 암각화는 산줄기 전체에 흩어져 있고, 조사는 주로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높은 곳으로 이동하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좋은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을 찍고 형상을 채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한국으로 반입하였으며, 그것을 반투명 투사지에 옮겨 도면화 하였다. 그 도면을 다시 50%로 축소한 후 스캐닝하였으며, 일러스트 파일화의 과정을 거쳐 연구의 기초 자료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전체의 형상은 물론 개개의 형상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화화 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향후 몽골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의 암각화 연구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선사시대 및 그 문화를 연구하는데 기초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사진 7] 목동(한가다이 유적지)
3. 바위그림 유적지 현황
1) 고비 알타이 아이막
 한국과 몽골의 공동 조사단이 2007년도에 조사하기로 합의한 암각화는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 내에 소재한다. 이 지역의 암각화는 아직 관련 학계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유적지들이다. 이 암각화들에 대한 조사는 현지 연구자 G.바상도르지가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의 D. 체벤도르지 소장에게 그 개략적인 내용 및 분포 상황을 소개하고 조사를 요청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따라서 2007년도에 한·몽 공동 조사단이 수행한 조사가 이 암각화의 공식적인 첫 번째 조사인 셈이다.
 암각화가 분포하고 있는 곳은 ‘로봉’이라고 하는 작은 산줄기이다. 고비 알타이 아이막에는 ‘한 타이쉬르’라고 하는 산맥이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있고, 그 산의 중간 지점에 알타이 시가 있다. 이 산맥의 서북쪽에는 해발 3579m의 ‘하사그트 하이르항’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로봉은 이 산맥의 끝단에 이어진 나지막한 산줄기이다. 로봉 산은 바양 올 솜에서 서북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위치하며, 그 길이는 약 20여 km에 이른다.
[지도] 바양 올 솜 유적지 현황
 이 로봉 산의 여러 줄기 가운데 7곳에서 규모와 내용을 달리하는 암각화들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난하드’라고 할 수 있다. 하난하드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나지막하게 뻗어 평지와 맞닿아 있는데[사진 5], 계곡의 입구에서부터 줄기의 제일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동남쪽 기슭의 암면에 그림들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입구에서부터 14개 구역을 나누어 암각화를 파악하였으며, 이곳에서 7일간에 걸쳐 총 146개의 암면에 그려진 형상들을 채록할 수 있었다.
 하난하드의 바로 맞은 편 산줄기에도 크고 작은 바위에 흥미로운 형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산줄기의 암각화 가운데서 핵심적인 제재는 마차[사진 8]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몽골의 여느 지역 암각화에서 살필 수 있는 것과 같이 전개도식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에 곁들여 말이나 낙타를 타고 있는 기마상과 사냥꾼 그리고 산양과 사슴을 중심으로 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 암각화 가운데서 모두 8곳의 암면에 그려진 형상들을 7월 28일에 촬영하고 또 채록하였다.
[사진 8] 마차도(움느드 올)
 ‘이흐 베르흐’는 바양 올 솜과 후흐모리트 솜 사이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이 산에도 적지 않은 양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으며, 이 가운데서 모두 여섯 곳의 형상을 부분적으로 채록할 수 있었다. 일행은 후흐모리트 솜으로 옮겨 ‘타쉬가이트’ 암각화를 답사하고 그 중의 일부 흥미로운 형상들을 촬영하고 또 채록하였다. 이곳에서는 모두 다섯 곳의 암면에 그려진 형상을 채록하였다. 이 두 지역의 암각화는 7월 29일에 조사하였다.
 노곤 혼드에서는 모두 48개 바위에 그려진 형상을 채록하였다. 이 유적지는 하난하드에서 서쪽으로 5~6km 떨어진 곳이며, 우뚝 솟은 산의 이곳저곳에 있는 바위 표면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산의 아래에는 케렉수르가 한 기 조성되어 있고[사진 9], 입구에서부터 꼭대기로 향하여 갈수록 흥미로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노곤 혼드로 들어오는 계곡의 입구 부분에는 ‘이흐 어트깅 아르이 테메 헤브트더크 혼드’, ‘하르 톨고인 보츠’ 등의 암각화 유적지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 하르 톨고인 보츠에서는 라마교와 관련된 도상들이 살펴졌다. 이 유적지들은 7월 30일에서 31일까지 조사하였다.
 노곤 혼드에서 산줄기를 달리하여 보다 꼭대기로 향하면 정상 부분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암각화를 만날 수 있는데, 그곳에는 동물 형상들과 함께 깃발을 든 기마병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 그리고 기마병들이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 등을 살필 수 있다. 바로 ‘돈드 햐린 혼드’ 암각화 유적이다.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하르 오갈즈가 있는데, 이곳에는 주로 사슴이 그려져 있었으며, 그 가운데는 크기가 최소 60cm에서부터 실물대에 이르기까지 대형의 사슴 형상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진 9] 케렉수르(노곤 혼드)
2) 호브드 아이막
 호브드 아이막에는 세계 학계에서도 유명한 ‘호이트 쳉헤르’ 동굴 벽화[사진 4]를 비롯하여 ‘찬드만 하르 우주르’[사진 10]와 ‘이쉬깅 톨고이’ 등 석기 시대의 것으로 판명된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그림들은 몽골의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이 문명의 여명기부터 인류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이곳을 인류 문화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고 주장하였다.
 2007년도에 한·몽 공동조사단의 주 조사지는 고비 알타이 아이막이지만, 차후의 연구 등을 위하여 호브드 아이막의 선사 미술 유적지도 답사하게 되었다. 물론 이 지역에 대한 답사는 이미 세계 암각화 학계에 알려진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롭게 형상을 채록하는 등 조사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구의 보조 자료 확보의 차원에서 일부 암면에 대한 부분적인 채록을 하였다.
 공동조사단은 8월 3일 아침에 알타이시를 출발하여 오후 늦게 호브드 아이막의 망항 솜에 도착하였으며, 이곳에서 몽골역사박물관과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다국적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흉노 시대의 무덤 발굴 현장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야영을 하였다. 다음 날 발굴 현장을 둘러 본 후, 호이트 쳉헤르 동굴 벽화가 있는 쳉헤르 강 계곡으로 이동을 하였으며, 그곳의 유목민 겔에서 다시 하룻밤을 야영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날 오전에 유목민들의 도움을 받아 호이트 쳉헤르 동굴벽화와 주변 지역의 암각화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사진 10] 찬드만 하르 우주르(호브드 아이막)
 호이트 쳉헤르 동굴벽화의 답사를 마친 후 곧장 호브드 아이막의 행정도시 호브드 시로 이동하였으며, 시 외곽에 있는 ‘바타르 하이르항’, ‘찬드만 하르 우주르’ 등지의 암각화를 답사하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에르뎅 부렝 솜의 ‘조스틴 하드’ 암각화를 답사하였으며, 이 암각화를 모두 채록하였다. 이러한 일정을 마친 후 다시 망항 솜을 경유하여 알타이시로 이동하였다. 물론 우리들은 도중에 망항 솜의 ‘이쉬깅 톨고이’ 암각화를 조사하였다.
 그밖에도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도중에 몇몇 암각화 유적지와 사슴돌을 답사하였으며, 이 가운데서 사슴돌 1기를 채록하였다. 사슴돌은 돌기둥에 사슴이 시문되어 있는 것을 이르며, 사슴 형상은 스키타이 시베리아의 동물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슴돌은 아르 항가이 아이막 이흐 타미르 솜 ‘차츠인 에레크’ 등지에서 조사하였으며, 역시 차츠인 에레크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암각화유적지를 답사하였다. 또한 볼간 아이막의 다쉰칠렌 솜에서도 ‘한가이다이’ 암각화 유적지를 답사하였는데, 이 가운데서도 뿔이 달린 뱀은 특히 조사자의 주목을 끌었다.
 이렇게 양국의 공동 조사단은 바양 올 솜을 중심으로 한 고비 알타이 아이막에서 총 9곳의 유적지를 조사하였고, 호브드 아이막에서 5곳의 암각화 유적지와 한 곳의 동굴벽화를 답사하였으며,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도중에 답사한 네 곳을 포함하여 총 19곳의 유적지를 조사하고 답사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촬영하고 채록한 형상들은 비단 해당 지역의 선사 미술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관계 그리고 한반도의 선사 및 고대 미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초 자료이다.
4. 주목을 끄는 형상들
 고비 알타이 아이막의 바양 올 솜에서는 ‘하난하드’ 암각화를 비롯하여 총 9개 유적지를 조사하였다. 이 지역 바위그림의 중심 제재는 동물들이지만, 각 유적지마다 특색이 있는 그림들이 표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하난하드’에서는 수렵, 마차, 군인 등의 형상들이 표현되어 있었으며, ‘움느드 올’과 ‘이흐 베르흐’ 암각화에서는 마차 형상들이 주목을 끌었다. ‘돈드 햐린 혼드’ 암각화에서는 깃발이나 창을 든 기마병들과 창을 들고 싸우는 기마병들이 눈길을 끌었으며, ‘하난하드’, ‘노곤 혼드’ 그리고 ‘이흐 베르흐’ 암각화에서는 성교, 의례 장면 등이 그려져 있었다.
[사진 11] 젖먹이(노곤 혼드)
 물론 이 지역의 암각화 가운데는 중앙아시아 암각화에서 살필 수 있는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동물,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동물, 초식동물을 공격하는 맹수 등 야생 동물의 세계가 기록 사진처럼 생생하게 포착된 점, 동물 사냥이나 그것을 이용하는 등 수렵 및 유목민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는 점 등이다. 그림의 제재로 산양과 사슴이 압도적으로 많이 그려져 있는 점, 낙타·소·멧돼지 그리고 늑대 등이 보조적인 제재였다는 점 등도 보편성 속에 포함된다. 또한 성교, 출산 등의 장면을 형상화 한 것은 비록 개체 수는 적지만, 중앙아시아의 암각화 가운데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 밖에도 이 지역의 암각화 가운데서도 버섯 모양의 머리에 창이나 활을 든 사람, 성교하는 사람, 출산 장면, 말이나 낙타 등 동물을 탄 사람, 깃발을 들고 말을 탄 사람, 말을 타고 창으로 싸우는 사람, 각종 마차와 그것을 타고 있는 사람 등이 보이는데,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암각화 가운데서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는 주제이며, 당시의 사회 상황을 그려내고 있어서 이 지역 선사 및 고대 문화 및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형상들이다.
[사진 12] 성교(노곤 혼드)
 그 가운데서는 특히 다양한 양식으로 그려진 동물 형상과 더불어 사냥 장면, 버섯 모양의 모자를 쓴 군인, 마차, 개마 무사, 깃발을 든 기마병, 전투도, 마차 행렬도 등은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형상들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것들이 이 지역을 무대로 생존을 영위하였던 수렵 및 유목민 문화의 세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슴돌을 통하여 ‘스키토-시베리아’ 동물 양식의 특징과 분포권 그리고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다. 사냥 장면은 중앙아시아 바위그림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며, 이러한 그림을 통하여 수렵도의 원형 및 변이과정을 더듬어낼 수 있다. 군인과 기마병 그리고 개마 무사 등은 고대 중앙아시아의 패자였던 흉노, 유연, 돌궐 제국의 용사와 무기 그리고 군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차 행렬도도 이동 수단의 실상 및 발전 과정을 추적·복원할 수 있게 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제의 그림들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마 무사는 덕흥리 고분 벽화 속의 그것과 유사하며, 깃발을 든 기마병이나 전투도 등은 안악 3호분의 행렬도 중 ‘기마인물도’ 그리고 삼실총의 ‘공성도’에서 창을 들고 싸우는 병사들과 유사하다. 또한 마차 행렬도는 덕흥리의 ‘소가 이끄는 수레와 시종’이나 ‘묘주 부인 출행도’ 등과 시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예로 든 암각화 속의 형상들과 고분 벽화 속의 그것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살펴진다. 양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제작 장소, 세부 장식, 기법 등이다. 이러한 유사성과 이질성은 선사 및 고대 중앙아시아 미술의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13] 사슴돌-석인상(차츠인 에레크)
5. 기대 효과
 이번에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서 광활한 중앙아시아 대륙에 폭넓게 확산되었던 수렵 및 유목민 문화의 보편성을 살필 수 있다. 바로 그 문화적 보편성 위에서 각 지역 간 이질성을 비교·분석할 때 한국 선사 및 고대 문화의 성격도 바르게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 조사로써 그동안 중국의 화상석이나 내륙아시아의 불교미술,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등 서역 일변도의 자료를 통해서 진행되어 온 국내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구 환경에 획기적으로 새로운 북방 지역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료들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 각주 022)
    독일 본대학교 고고학연구소와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몽골의 고고학’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여 조사내용을 보고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23)
    동북아역사재단(2008),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33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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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개요 및 유적지 현황 자료번호 : ag.d_0001_001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