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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경주 덕천리 유적

  • 저필자
    황재훈(서울대학교)
  • 날짜
    2004~2006
  • 시대
    청동기~조선 2004년 영남, 2006년 신라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2리 484-2번지, 덕천 3리 현동마을 일원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입지
2004~2006년 영남문화재연구원과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서 각각 발굴조사를 시행하였음.
유적개관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여러 유구가 확인이 되었으며, 원삼국시대 유구는 목관묘 14기와 토광묘 2기가 확인되었음. 대다수가 판재식 목관묘이며 일부에서는 예외적으로 2단 굴착의 흔적이 확인되었음. 덕천리 유적에서 가장 주목받는 점은 '주구'의 존재인데, 영남지역에서 주구가 확인된 유적은 경주 덕천리, 대구 팔달동, 울산 다운동 유적뿐이며 'ㅡ', 'ㄷ', 'ㅁ'자형으로 확인됨. 몇몇 유구에서는 저장용의 호류와 취사용인 옹류의 세트부장이 보임. 특히, 130호 무덤의 경우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토광목관묘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유일하게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어 지역 수장급으로 추정되고 있음.
출토유물
* 검파부철검 심부, 검파두식, 호형대구, 마형대구, 철검, 환두도자, 무경식철촉, 판상철부, 철환, 점토대토기, 주머니호, 단경호, 방제경, 호형대구, 마구 등
참고문헌
「慶州 德泉里遺蹟」
해설
내남지구는 경주시의 서남쪽에 위치하는데 동쪽으로 외동읍, 서쪽으로 건천읍과 산내면, 남쪽으로 울산광역시와 인접한다. 북쪽에는 해발 425m의 벽도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이조천 동편으로는 넓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덕천리 유적 주변의 구릉지대와 충적대지에는 덕천리 고인돌, 덕천리 고분군, 덕천리 야철지, 월산리유적, 화곡리유적, 화곡지유적, 방내리 고분군, 방내리 생활유적, 송선리유적 등이 위치한다.
경부고속철도 건설 부지에 해당하여 1996년~1997년에 걸쳐 영남문화져연구원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에 2002년~2003년에 걸쳐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시굴조사가 실시되어 청동기시대 취락, 원삼국시대 분묘, 삼국시대 생활유구, 통일신라시대 도로유구, 조선시대 생활유구 등 발굴조사의 필가마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동 기관과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 의해 2004년~2006년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을 비롯하여 원삼국시대 덧널무덤・널무덤・독무덤, 삼국시대 구덩유구・습지・굴립주건물지, 통일신라시대 도로유구, 조선시대 구덩유구・굴립주건물지 등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모두 세 지점인데 내남면 소재지 서편의 신은들, 모래물들, 동보들로 불리는 덕천들의 가운데 위치하는 영남문화재연구원 조사지점, 현동들의 북편 구릉 말단부와 현동지 부근의 고안골 북편 구릉부의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조사지점으로 구분된다. 영남문화재연구원 조사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 유구는 집자리 26기, 돌널무덤 1기, 구덩유구 3기, 집석유구 2기, 도랑유구 1기가 조사되었는데 선상지에 입지한 대규모의 평지성 취락이다.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조사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 집자리 48기, 구상유구, 목책이 조사되었는데 구릉 사면에 입지한 취락이다.
집자리는 모두 평면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청동기시대 전기~중기에 해당한다. 생활면은 정지 후 불다짐한 것과 별다른 시설 없이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바닥면 중앙에는 원형으로 얇게 굴착하여 조성한 화덕자리가 조성되어 있다. 벽면에는 단면 U자형의 벽도랑과 외부돌출구가 시설되었다. 벽도랑 내부에는 벽체를 세우기 위한 기둥구멍이 열을 지어 배치되어 있다. 기둥구멍자리는 집자리 내측에 2×2의 4주식 또는 2×3의 6주식, 2×4의 8주식의 배치를 보인다. 모서리 벽면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공이 확인된다. 영남문화재연구원 14호와 23호에서는 출입구나 선반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시설이 확인되었다. 자연 폐기된 것과 화재 폐기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후자 중 몇몇 집자리에서는 집석행위가 확인된다. 가장 규모가 큰 집자리는 11호 집자리로 평면 세장방형으로 길이 1,438㎝, 너비 452㎝, 면적은 65㎡이다. 집자리의 조성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를 기준으로 기원전 11세기~6세기(2510±60 BP~3010±60 BP) 정도로 편년된다.
돌널무덤은 주거군의 북편에 치우쳐 위치한다. 무덤방의 크기는 장축 80cm, 단축 40cm이며 깊이는 30cm 정도이다. 거친 판석을 세워쌓기하여 벽석을 구축하였다. 바닥면에서는 다량의 목탄과 인골 부스러기가 관찰되며, 바닥석과 벽석에도 불에 맞은 흔적이 확인되는바 돌널 내 화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항아리형토기, 깊은바리형토기, 구멍무늬토기, 단사선문, 겹아가리단사선문토기, 골아가리토기, 구멍무늬단사선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토기류와 갈돌, 갈판, 원판형석기, 관옥, 간돌도끼, 보습, 원형석제품, 갈돌, 갈판, 숫돌, 보습, 반달돌칼, 가락바퀴, 간돌화살촉, 간돌검,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덕천리유적에서는 서로 다른 문양이 시문된 토기와 다양한 주거 구조가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물질문화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또한 11호 집자리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콩은 청동기시대 농경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돌널무덤에서는 사례가 매우 드문 화장 흔적이 확인되어 이 시기 장제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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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덕천리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4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