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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하남촌고분

河南村墓葬
  • 저필자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 시대
    발해/요금
  • 위치
  • 원소장처
    吉林省 和龍市 八家子鎭 河南村 서쪽 가장자리 논(길림성 화룡시 팔가자진 하남촌 서쪽 가장자리 논)
  • 시대
    발해
  • 유형
    무덤
입지
북쪽으로 해란강(海蘭江)과 인접해 있고, 그 나머지 3면은 하남촌고성(河南村古城)으로 감싸여 있다.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조(양천)화(룡)(朝(陽川)和(龍)) 철로가 동서로 지나간다.
유적개관
하남촌고성(河南村古城) 중간에서 서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한 변 길이가 120m에 달하는 네모난 담장(위장(圍墻))이 있는데, 남쪽 담장 가운데 문지가 있다. 담장의 정중앙에는 동서로 나란히 한 개의 봉토를 사용하는 두 기의 무덤이 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이 1호 무덤, 서쪽에 있는 것이 2호 무덤이다. 두 기의 무덤은 모두 전실(磚室)무덤으로 남북향으로, 형식과 크기는 대체로 같으며, 길이는 2.40m, 너비 1.40m, 높이 0.47m이다.
유물개관
* 1호무덤에서는 작은 금대구(金帶扣) 2점, 금으로 된 용장식(금룡수식(金龍首飾)) 2점, 금팔지(금천(金釧)) 1점, 금귀고리(금이환(金耳環)) 1쌍, 은팔지(은천(銀釧)) 1점이 출토되었다. 2호무덤에서는 금대구(金帶扣), 금과(金銙)와 사미(鉈尾) 등으로 구성된 금대(金帶) 1점, 금으로 된 네모고리(금방환(金方環)) 14점, 작은 금대구(金帶扣) 8점, 금적환(金吊環) 9점, 안장형태의 금장식(안형금식(鞍形金飾)) 9점, 병수금식(柄首金飾) 4점, 도초금식(刀鞘金飾) 4점, 금비녀(금채(金釵)) 2점, 금화식건(金花飾件) 26점, 쇠칼(철도(鐵刀)) 1점, 숫돌(려석(礪石)) 1점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하남촌무덤(河南村墓葬)은 팔가자진(八家子鎭)에서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하남촌(河南村) 서쪽 가장자리 논 가운데 있다. 북쪽으로 해란강(海蘭江)과 인접해 있고, 그 나머지 3면은 하남촌고성(河南村古城)이 감싸고 있다.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조양천-화룡(朝陽川-和龍)철로가 동서방향으로 지나간다. 1971년 하남촌에 거주하는 농민이 무덤 두 기를 발견하였으며, 이곳에서 금제품[金器]이 출토되었다. 같은 해 9월, 길림성박물관(吉林省博物館)과 연변조선족자치주전람관(延邊朝鮮族自治州展覽舘 : 즉 지금의 연변박물관), 그리고 화룡현문화관(和龍縣文化館) 등에서 무덤 2기의 나머지 부분을 조사하였다.
하남촌고성(河南村古城) 중앙에서 서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한 변 길이가 120m에 달하는 네모난 담장[圍墻]이 있고, 남쪽 담장 가운데에는 문지가 있다. 담장 한 가운데에는 동서로 나란하나의 봉토를 사용하는 두 기의 무덤이 있었다. 동쪽에 있는 것이 1호 무덤, 서쪽에 있는 것이 2호 무덤이다. 두 무덤은 모두 전실무덤이다. 방향은 남북향이며, 형식과 크기는 대체로 같다. 길이는 2.40m, 너비 1.40m, 높이 0.47m이다.
무덤칸 네 벽은 모두 장방형의 푸른색 벽돌로 쌓았고, 백회를 발라서 틈을 메웠다. 무덤 바닥은 방형 벽돌을 깔았다. 이 무덤은 조사 전에 이미 무덤 천정이 훼손되었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원래 무덤 천정은 커다란 판석 8장을 두 겹으로 덮여 있었고, 두 무덤 위에는 동서 28m, 남북 약 20m, 높이 약 2m에 달하는 커다란 봉토가 있었으며, 그 위에는 30여개(다른 설에는 20여개)의 커다란 초석이 동서 방향으로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사 당시 무덤 앞에서 동남쪽으로 약 2m 정도 떨어진 곳에도 초석(현재는 없음) 1개가 있었다고 한다. 무덤 앞쪽으로 약 1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재구덩이(灰坑)가 있었는데, 이 구덩이에는 벽화를 그렸던 흙벽[土坯] 잔편ㆍ쇠갈고리[鐵勾] 잔편과 건축재료 등이 쌓여 있었다.
두 무덤에 보기드믄 금속품이 출토되었다. 1호 무덤에서는 금대구(金帶扣) 2점ㆍ금으로 된 용머리장식[金龍首飾] 2점ㆍ금팔지[金釧] 1점ㆍ금 귀고리[金耳環] 1쌍ㆍ은팔지[銀釧] 1점이 출토되었다. 2호 무덤에서는 금대구(金帶扣)ㆍ금대과(金銙)와 타미(鉈尾) 등으로 구성된 금 허리띠(金帶) 1점ㆍ금으로 된 네모 고리[金方環] 14점ㆍ작은 금대구(金帶扣) 8점ㆍ금조환(金吊環) 9점ㆍ안장형태의 금장식[鞍形金飾] 9점ㆍ자루가 있는 금장식[柄首金飾] 4점ㆍ칼집금장식[刀鞘金飾] 4점ㆍ금비녀[金釵] 2점ㆍ금꽃장식[金花飾件] 26점ㆍ쇠칼[鐵刀] 1점ㆍ숫돌[礪石] 1점이 출토되었다. 두 무덤에서 출토된 금장식은 형식의 다양하고, 제작기법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남촌의 두 무덤은 동서로 나란하며 1개의 봉토를 사용하였다. 봉토에는 건축물을 축조하였으며, 무덤 주위에는 담장도 시설하였다. 1호 무덤에서는 금은 팔지ㆍ금귀걸이가 출토되어 무덤주인은 여성으로 생각되며, 2호 무덤에서는 금허리띠와 허리에 차는 칼[佩刀]이 출토되었으므로 무덤주인은 남성으로 생각된다. 이것으로 판단하면, 분명 왕실귀족의 부부이혈합장묘(夫婦異穴合葬墓)로 판단된다.
무덤에서 출토된 금장식은 형식으로 보면, 분명히 당나라 형식이 보인다. 그 중에서 금꽃장식(金花飾件)ㆍ금비녀ㆍ금으로 만든 네모난 고리[金方環]와 작은 금으로 만든 대구[小金帶扣] 등은 서안(西安) 남쪽교외에 있는 향가촌(向家村) 당나라 요지(窯藏)에서 출토된 금잔장식문양[金杯紋飾], 당나라 영태공주(永泰公主) 무덤에서 출토된 대구형식과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발해무덤으로 판단된다. 이 유물들은 무덤 주인공의 신분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발해 공예 및 당나라와 발해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실증자료를 제공한다.
참고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4, 「和龍文物志」, 30~32쪽.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522~5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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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촌고분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80_0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