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왕(滇王)이 한(漢)의 사자와 나라의 크기에 대해 대화함
전왕이 한의 사자와 더불어 이야기하면서 말하기를, “한나라와 우리 중에 어느 쪽이 더 큰가?”라고 하였다. 야랑후 또한 그렇게 말하였다.주 001
각주 001)
길이 통하지 않은 까닭에 각기 스스로를 한 주(州)의 주인주 002으로 여기고, 한나라의 광대함은 알지 못하였다. 사자가 돌아와 과장되게 칭찬하여 말하기를 전(滇)은 큰 나라로 가까이 지내기에 족하다고 하니, 천자가 주목하였다.滇王과 夜郞侯를 모두 만나고 이러한 이야기를 천자에게 전한 漢의 사자는 누구이며, 이러한 일이 일어난 때는 언제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司馬相如傳」의 기록이다. 「司馬相如傳」에 따르면, 사마상여 외에 王然于·壺充國·呂越人이 副使로서 이 사행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서이지역뿐만 아니라, 남이지역인 장가에까지 이른다(『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第57, 3046쪽).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부사로 참여한 인사 중 王然于와 呂越人은 이후 武帝의 명령으로 신독국도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사람들이며, 특히 왕연우는 이후 기원전 109년에 전왕에게 입조를 권유하는 사자로 파견되었다. 이러한 정황들로 보건대, ‘夜郞自大’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한의 사자와 전왕 및 야랑후의 회견은 사마상여의 서이 경략에 부수하여 일어난 일로 보아도 좋을 듯하며, 이 사자는 서이 경략에 참여한 부사 일행, 특히 그 중에서도 왕연우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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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滇王과 夜郞侯를 모두 만나고 이러한 이야기를 천자에게 전한 漢의 사자는 누구이며, 이러한 일이 일어난 때는 언제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司馬相如傳」의 기록이다. 「司馬相如傳」에 따르면, 사마상여 외에 王然于·壺充國·呂越人이 副使로서 이 사행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서이지역뿐만 아니라, 남이지역인 장가에까지 이른다(『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第57, 3046쪽).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부사로 참여한 인사 중 王然于와 呂越人은 이후 武帝의 명령으로 신독국도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 사람들이며, 특히 왕연우는 이후 기원전 109년에 전왕에게 입조를 권유하는 사자로 파견되었다. 이러한 정황들로 보건대, ‘夜郞自大’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한의 사자와 전왕 및 야랑후의 회견은 사마상여의 서이 경략에 부수하여 일어난 일로 보아도 좋을 듯하며, 이 사자는 서이 경략에 참여한 부사 일행, 특히 그 중에서도 왕연우이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 각주 002)
색인어
- 지명
- 한, 한나라, 한나라, 전(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