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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전 판장기현사 김인우를 우산도·무릉도 등지의 안무사로 삼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25년 8월 8일(음)
  • 출전
사료해설
조선 정부의 쇄환정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릉도(武陵島; 울릉도)에 도망가 살던 김을지(金乙之) 등 남녀 28명이 다시 울릉도로 몰래 들어가 살다가 그 일부가 작은 배로 몰래 평해군 구미포(仇彌浦)에 왔다가 발각되었다. 조정에서는 울릉도 지리에 밝은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로 삼아 울릉도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을 쇄환하도록 하였다. 관직명에 ‘우산’과 ‘무릉’ 두 섬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은 조선 정부의 영토관리정책 대상에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가 포함되었음을 보여준다.
원문
○甲戌/以前判長鬐縣事金麟雨爲于山、武陵等處按撫使。 初, 江原道平海人金乙之、李萬金、亏乙金等, 曾逃居武陵島, 歲丙申, 國家遣麟雨盡行刷還。 癸卯, 乙之等男婦共二十八名, 復逃入本島, 今年五月, 乙之等七人留其妻子於本島, 乘小船潛到平海郡仇彌浦發覺, 監司囚之, 本郡馳報。 於是復爲刷還。 麟雨率軍人五十名, 備軍器, 齎三月糧, 浮海而去, 島在東海中。 麟雨, 三陟人也。
번역문
전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 김인우(金麟雨)를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 등지의 안무사(安撫使)로 삼았다. 당초에 강원도 평해(平海) 고을 사람 김을지(金乙之)·이만(李萬)·김울금[金亐乙金] 등이 무릉도에 도망가 살던 것을, 병신년에 국가에서 인우를 보내어 다 데리고 나왔는데, 계묘년에 을지 등 남녀 28명이 다시 본디 섬에 도망가서 살면서, 금년 5월에 을지 등 7인이 아내와 자식은 섬에 두고 작은 배를 타고 몰래 평해군 구미포(仇彌浦)에 왔다가 발각되었다. 감사가 잡아 가두고 본군(本郡)에서 급보(急報)하여 곧 도로 데려 내오기로 하고서, 인우가 군인 50명을 거느리고 군기와 3개월 양식을 갖춘 다음 배를 타고 나섰다. 섬은 동해 가운데 있고, 인우는 삼척(三陟)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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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판장기현사 김인우를 우산도·무릉도 등지의 안무사로 삼다 자료번호 : sd.d_0149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