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두 섬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우산도(于山島)·울릉도(鬱陵島)
무릉이라고도 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무릉이라고도 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송도(松島: 마쓰시마, 독도)이다’라고 했으니 대체로 두 섬은 모두 우산국이다.
내가 살펴보니, “여지지(輿地志)”에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하나 여러 도지(圖志)를 상고하면 두 섬이다. 하나는 왜가 말하는 『강계주 001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이 저술한 역사지리서이다. 우산도에 대해 일본이 송도(마쓰시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에도 시대에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호칭했다. 그러므로 우산도가 독도임을 이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산도와 울릉도가 우산국에 속한다고 한 것은 두 섬 모두 조선의 영토임을 말한 것이다.
4) 동국문헌비고(1770년)
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우리 역사에서의 독도에 대한 인식을 마인드맵의 빈칸에 들어갈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삼국사기 | 512년 여름 6월에 우산국 사람들이 항복하고 매년 토산물을 신라에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
세종실록 지리지 | 두 섬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동국문헌비고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고 하였다. |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
안용복은 동래부 출신의 조선 후기의 어부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동래부의 전선(戰船)에서 노를 젓는 군인으로도 복무하였고, 동래부의 왜관에 출입하면서 일본어에 능숙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