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5.5. № 22로 조선주재 러시아제국 총영사관 서리영사 7등관 치르킨이 도쿄주재 러시아제국 공사에게 보고한 문서 사본
Копия с донесения Управляющего Российско-ИМПЕРАТОРСКИМ Генеральным Консульством в Корее Надв.Сов.Чиркина Г.Российско-ИМПЕРАТОРСКОМУ Послу в Токио от 5 Мая 1911 г. alternative№ 22.
[저는]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잡히지 않았던 한국 무장봉기자들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사람인 강기동 대장이 일본인들에 의해 체포된 것에 대해 올해 3월 25일자 № 11로 보고 드리는 영예를 가졌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총살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4월 말에 있었던 선고는 서울 용산에서 군법판결로 한국의 헌병대장과 용산에 배치된 군 장교들의 배석 하에 수행되었습니다.
빨치산들의 소재지를 알리는 대가로 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는 경상북도에 있는 도시인 안동 근처의 산악에 은신하고 있던 총살된 강의 공모자인 정경태주 001 대장을 검거하게 하였습니다.
이미 이전의 보고에서 언급하였듯이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지고 있고 단지 조선의 북부지역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본부대와 폭도무리들의 전투에 대한 보도는 수시로 전해지며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얼마 전 이 지역에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김철수주 002라는 사람을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는 이미 재판을 위해 서울로 송치된 상태입니다.
이곳에 퍼져있는 소식들에 의하면 조선의 북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 봉기자 무리들의 주요 구성원들은, 전(前) 페테르부르크 한국공사인 이범진의 친척이며 이전에 연해주에서 체포되어 이르쿠츠크 주로 보내진 이범윤의 공모자들인 조선인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그에 의해 조직된 부대는 지도자 없이 남겨졌지만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함경도 북쪽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일본군과 맞닥뜨려 일본군이 압도적 힘으로 공습해올 경우에는 대개 근처의 간도(間島)로 피신합니다.
조선북부에서 빨치산과의 투쟁이 성공한 것에 대해 일본인들은 일정 정도 연해주의 러시아 당국이 취한 우호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즉 [러시아 당국이] 이범윤 및 그와 같은 인물들의 반일선전을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해 탄압조치를 취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흥미로운 일입니다.
가끔 조선의 중앙과 남쪽지역의 무장봉기자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들은 단지 대부분 이전에 숨었거나 지금은 자신의 생가로 돌아간 개별적 인사들의 체포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신중을 기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깊은 존경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