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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요동 지역의 거란의 번창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추밀부사(樞密副使) 한기(韓琦)의 상소

  • 날짜
    1043년 7월 (음)(慶曆 3年(1043) 7月 甲午)
  • 출전
    卷142 慶曆 3年(1043) 7月 甲午
추밀부사(樞密副使)주 001
각주 001)
樞密副使 : 북송의 관직. 唐代의 樞密院은 황제 명령의 出納을 맡은 관청이었지만, 宋代에는 中書省과 함께 二府로 불리면서 武官의 선발과 관직 임명, 변경 방어 및 군사 주둔에 관한 政令을 담당하는 군사 기구였다. 樞密副使는 추밀원의 副長官이었고, 元豐 4年(1081) 정월에 폐지되었다가 남송 紹興 7年(1137)에 다시 두어졌다. 남송 시대에 樞密副使는 품계가 正2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樞密副使는 줄여서 樞副, 副樞, 副密, 樞貳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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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韓琦)주 002
각주 002)
韓琦 : 1008~1075. 북송의 관인. 相州 安陽 사람으로, 字가 稚圭이다. 일찍이 진사에 합격, 知州按撫使, 절도사 등으로 지방행정에 두각을 나타내고, 서하의 침입을 격퇴함으로써 30세에 문무에 명성을 떨쳐 추밀부사가 되었다. 자청하여 지방관을 역임하고 인종 嘉祐 연간에는 재상에 올라 10여 년간 국정에 참여하였다. 신종 즉위 후 다시 지방으로 갔으며, 왕안석의 靑苗法 실시를 비난하고, 거란(요)의 할지에 대해서도 왕안석과 대립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일생 동안 많은 저작과 시문을 지었으며, 문집으로 『安陽集』이 있다. 시호는 忠獻이고, 후에 魏郡王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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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상소하여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한문제(漢文帝)주 003
각주 003)
漢文帝 : B.C.202~B.C.157, 재위 B.C.180~B.C.157. 前漢의 5대 황제 孝文帝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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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고조(高祖)주 004
각주 004)
高祖 : B.C.247~B.C.195, 재위 B.C.202~B.C.195. 前漢을 세운 太祖 高皇帝 劉邦을 말하며, 흔히 漢高祖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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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혜제(惠帝)주 005
각주 005)
惠帝 : B.C.210~B.C.188, 재위 B.C.195~B.C.188. 前漢의 2대 황제 孝惠帝를 말한다. 어머니 呂氏의 야심 때문에 정치에 뜻을 잃고 요절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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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평화로운 시대를 이어받은 이후에 몸소 절약을 실천하여 국가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은 부유해지고 형벌은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가의(賈誼)주 006
각주 006)
賈誼 : B.C.201~B.C.168. 前漢의 관인. 洛陽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시문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守吳公의 추천으로 문제에 중용되어 博士가 되었다. 정삭과 服色을 고치고 법도를 마련하고 예악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정치 개혁에 관한 여러 상소를 올렸다. 당시 문제가 그를 公卿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遭周勃·灌嬰 등의 대신의 반대로 폄출되어 이후 長沙王과 梁懷王의 太夫가 되었다. 저서로는 『新書』와 『賈長沙集』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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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글을 올려 사안을 말하면서 오히려 통곡을 하고 크게 탄식을 하였으니,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무릇 깊이 근심하고 멀리 생각하여 장구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은 대한(大漢)의 기업을 천만세에 드리워 끝이 없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세 성인의 아름다운위엄을 이어 인(仁)과 덕(德)은 멀리까지 미치고 천하가 크게 평정되었으니, 백성들이 자신의 생업을 즐긴 것이 80여년입니다. 그러나 신이 가만히 요즘의 일을 보니 밤낮으로 피눈물이 흐른다고 할 만한데도 똑바로 통곡하고 크게 한숨을 짓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무릇 서쪽과 북쪽의 두 적 때문에 전화(戰禍)로 인한 피해가 이미 일어났는데도 상하가 모두 태연(泰然)하여 조정이 장차 위험하고 종사(宗社)가 편안하지 않음을 알지 못합니다. 신은 지금 매우 자세히 인용할만한 겨를이 없으므로, 청컨대 간략히 대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거란(요)은 큰 사막에 있으면서 요동에 걸치고는 전체 연 지역의 수십 군에 웅거한 큰 세력으로, 동으로는 고려를 복속시키고 서로는 이원호를 신하로 삼았으며, 오대(五代)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백 여 년간 중원과 대항하면서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 문물과 음식, 의복의 성장(盛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漢)의 풍습을 익혔으며, 그렇기 때문에 적의 기세가 매우 교만하여 스스로 옛날 북위(北魏)주 007
각주 007)
北魏 : 386~534. 중국 남북조 시대 화북을 지배했던 왕조이다. 대흥안령 북부에 거주하였던 森林民鮮卑 탁발부가 3세기 중반에 부족을 연합하며 발전한 이래로 5호 16국 시대에 代國을 세웠고 398년 平城에 천도하여 북위를 건설하였다. 효문제의 강력한 한화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六鎭의 반란 이후 동서로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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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는 같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거란이) 한의 흉노, 당의 돌궐과는 같지 않다고 해도 본래 오랑캐가 자처하는 것은 중국이 좋아하거나 숭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근래 다시 조정이 서방으로 군대를 일으키려 한다며 맹약을 어기고는 사신을 보내 관남의 땅을 요구하여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조정이 생민(生民)을 아끼고 생각하여 그들을 위해 숨기고 참아 해마다 (보내는) 돈과 비단의 수를 더해주면서 또 이전의 맹약을 굳게 하였는데, 그러나 오히려 헌납한다는 명분을 강요하면서 스스로를 크게 높였습니다. 중국을 가벼이 여기는 사정이 볼만합니다.”라고 하였다.

  • 각주 001)
    樞密副使 : 북송의 관직. 唐代의 樞密院은 황제 명령의 出納을 맡은 관청이었지만, 宋代에는 中書省과 함께 二府로 불리면서 武官의 선발과 관직 임명, 변경 방어 및 군사 주둔에 관한 政令을 담당하는 군사 기구였다. 樞密副使는 추밀원의 副長官이었고, 元豐 4年(1081) 정월에 폐지되었다가 남송 紹興 7年(1137)에 다시 두어졌다. 남송 시대에 樞密副使는 품계가 正2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樞密副使는 줄여서 樞副, 副樞, 副密, 樞貳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韓琦 : 1008~1075. 북송의 관인. 相州 安陽 사람으로, 字가 稚圭이다. 일찍이 진사에 합격, 知州按撫使, 절도사 등으로 지방행정에 두각을 나타내고, 서하의 침입을 격퇴함으로써 30세에 문무에 명성을 떨쳐 추밀부사가 되었다. 자청하여 지방관을 역임하고 인종 嘉祐 연간에는 재상에 올라 10여 년간 국정에 참여하였다. 신종 즉위 후 다시 지방으로 갔으며, 왕안석의 靑苗法 실시를 비난하고, 거란(요)의 할지에 대해서도 왕안석과 대립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일생 동안 많은 저작과 시문을 지었으며, 문집으로 『安陽集』이 있다. 시호는 忠獻이고, 후에 魏郡王에 추증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漢文帝 : B.C.202~B.C.157, 재위 B.C.180~B.C.157. 前漢의 5대 황제 孝文帝를 말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4)
    高祖 : B.C.247~B.C.195, 재위 B.C.202~B.C.195. 前漢을 세운 太祖 高皇帝 劉邦을 말하며, 흔히 漢高祖라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5)
    惠帝 : B.C.210~B.C.188, 재위 B.C.195~B.C.188. 前漢의 2대 황제 孝惠帝를 말한다. 어머니 呂氏의 야심 때문에 정치에 뜻을 잃고 요절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6)
    賈誼 : B.C.201~B.C.168. 前漢의 관인. 洛陽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시문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守吳公의 추천으로 문제에 중용되어 博士가 되었다. 정삭과 服色을 고치고 법도를 마련하고 예악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정치 개혁에 관한 여러 상소를 올렸다. 당시 문제가 그를 公卿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遭周勃·灌嬰 등의 대신의 반대로 폄출되어 이후 長沙王과 梁懷王의 太夫가 되었다. 저서로는 『新書』와 『賈長沙集』가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7)
    北魏 : 386~534. 중국 남북조 시대 화북을 지배했던 왕조이다. 대흥안령 북부에 거주하였던 森林民鮮卑 탁발부가 3세기 중반에 부족을 연합하며 발전한 이래로 5호 16국 시대에 代國을 세웠고 398년 平城에 천도하여 북위를 건설하였다. 효문제의 강력한 한화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일어난 六鎭의 반란 이후 동서로 분열되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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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지역의 거란의 번창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추밀부사(樞密副使) 한기(韓琦)의 상소 자료번호 : jt.k_0004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