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조(顯祖)가 백제에게 내린 조서(詔書)
지난 경진년(440) 이후에 신이 우리 나라 서쪽 경계인 소석산북국주 001의 바다 가운데서 시신 10여 구를 발견하고 아울러 의복과 기물, 안장과 굴레를 얻었는데, 그것을 살펴보니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는 황제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내려오던 중 기다란 뱀주 002이 길을 막아 바다에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마음속 깊이 분노를 품게 됩니다. 옛날 송나라가 신주를 죽이자 초나라 장왕이 맨발로 뛰어나갔고,주 003 새매가 놓아준 비둘기를 낚아채자 신릉군주 004은 먹지를 않았습니다. 적을 이겨 이름을 세우는 것은 아름답고 높기가 그지없습니다. 무릇 구구한 변방의 나라들도 오히려 만대의 신의를 사모하는데, 하물며 폐하께서는 그 기개가 하늘과 땅에 부합하고, 세력은 산과 바다를 기울게 할 만한데, 어찌 더벅머리 아이(고구려왕)가 천자에게 가는 길에 걸터앉아 가로막게 하십니까? 이제 습득한 안장 하나를 올리니 이 한 가지로 사실을 징험하십시오.”
현조주 005는 [백제가] 그 궁벽지고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공하였다고 생각하여 예우를 더욱 두텁게 하고, 사신 소안을 파견하여 백제의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면서 조서를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표문을 받고 별 탈이 없다고 들으니 매우 기쁘오. 경이 동쪽 구석 오복 주 006 밖에 있으면서도 산과 바닷길을 멀다 하지 않고 위나라의 궁궐에 정성을 바치니 지극한 뜻을 기쁘고 가상히 여겨 마음속에 간직해두었소. 짐은 만세의 위업을 이어받아 천하(四海)에 군림해서 모든 살아있는 것을 다스리고 있소. 지금 온 세상이 깨끗이 하나가 되고 팔방 구석 먼 곳에서도 귀의해 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오는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풍속이 조화로워지고 병사와 군마가 강성해진 것은 모두 여례 등이 직접 듣고 보았소. 경은 고구려와 화목하지 못하여 여러 차례 능멸과 침범을 당했으나 진실로 의에 따르고 인으로써 지킬 수 있다면 원수에 대해 또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앞서 보낸 사신은주 007 바다를 건너 황복주 008 밖의 먼 나라를 위무하게 하였는데, 이제까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달했는지 못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가 없었소. 경이 보낸 안장은 옛날 타던 것과 비교해보니 중국의 물건이 아니었소. 비슷한 일을 가지고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아니 되오. 나라를 다스리고 경영하는 요체는 별지에 갖추어 놓았소.”
또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고[구]려가 강함을 믿고 경의 영토를 자주 침범하며, 선대 임금의 옛 원한을 갚으려고 백성을 쉬게 하는 커다란 덕을 버려 전쟁이 여러 해에 걸치고 환난이 황복 변경에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대가 보낸] 사신은 신서주 009의 정성을 겸비하였고 나라에는 초·월과 같은 위급함주 010이 있으니, 이에 마땅히 의로움을 펼치고 약한 자를 도와 기회를 타서 번개처럼 쳐야 할 것이오. 다만 고[구]려가 선대의 조정부터 번국이라 칭하면서 조공을 한 지가 오래되었소. 저들(고구려)에게 비록 예로부터 지은 흠이 있지만, 우리 나라(魏)에 대해서는 아직 명령을 어긴 허물이 없소. 경이 사신을 처음 통하면서 곧바로 정벌할 것을 요구하는데, 일의 시기를 깊이 따져보니 이치가 또한 충분하지 않소. 그래서 지난해주 011에 여례 등을 보내 평양에 이르러 그 사유와 정상(由狀)을 징험하고자 하였소. 그러나 고[구]려가 여러 차례 상주하여 요청하였고, 말과 이치가 모두 맞으니 사신이 그 주청을 억제할 수 없었고, 법관도 그 죄책을 물을 [죄상을 엮어낼] 수가 없었소. 그 때문에 아뢰는 바를 듣고, 여례 등에게 조서를 내려 돌려보내는 것이오. 만약 지금이라도 다시 짐의 뜻을 어긴다면 과오와 허물이 더욱 드러날 것이므로, 나중에 비록 스스로 진술한다고 하더라도 죄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오. 그런 다음에 군사를 일으켜 치는 것이 의에 합당할 것이오. 구이주 012의 나라들은 대대로 바다 건너 살면서 도가 창달되면 번국으로서의 예를 받들고 은혜를 거두면 자기 강토를 보전할 뿐이었소. 그러므로 속박해 묶는 일주 013은 옛 전적에 드러나 있으나 호시주 014를 바치는 것은 연중 때때로 비었소. 경은 강약의 형세를 갖추어 아뢰고 과거의 행적을 모두 열거하였는데, 풍속이 다르고 사정도 달라 비기고 견주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지만, [우리의] 큰 규칙과 큰 책략은 도달하고자 하는 바가 여전히 있소. 지금 중국이 하나로 평정되고 통일되어 천하에 근심이 없으므로 매번 동쪽 끝까지 위엄을 드높이고 국경 밖에 깃발을 매달며, 외딴 나라에서 백성들을 구하고 먼 지역까지 황제의 위풍을 펼치려고 하였으나, 진실로 고구려가 제때에 사정을 말하였기 때문에 아직 정벌을 점칠 단계에는 미치지 못했소. 지금 만약 [고구려가] 조서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경이 가져온 계책이 짐의 뜻에 일치하므로 대군(元戎)이 출동하는 것도 장차 멀다고 할 수 없을 것이오. [경은] 곧 미리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가 함께 일으킬 수 있으니 갖추어 놓고 일을 기다릴 것이며, 때때로 보고하는 사신을 보내어 속히 저쪽의 정황을 알려주도록 하시오. 군사를 일으키는 날에 경이 [길을 안내하는] 향도의 우두머리가 되면 크게 승리한 뒤에는 또 으뜸가는 공훈의 상을 받을 것이니 또한 좋지 않겠소? 바친 비단과 베, 해산물이 비록 어떤 물건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나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으니, 이제 여러 가지 물건을 별지와 같이 내리오.”
또 연에게 조서를 내려 소안 등을 [백제로] 호송케 하였다. 소안 등이 고구려에 이르자 연은 예전에 여경과 원수진 일이 있다 주 015고 하면서 동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소안 등이 이에 모두 돌아오자 조서를 내려 그들을 준절히 꾸짖었다. 5년(475) 소안 등으로 하여금 동래주 016 에서 바다를 건너가서 여경에게 옥새가 있는 문서를 하사하여 그 정성과 절개를 포상하게 하였다. 소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바람을 만나 떠다니다가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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