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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4-3단원 3차시
  • 저필자
    황지숙(신림고 역사 교사)

서민 문화의 발달

명‧청 대의 서민 문화
에도 시대의 서민 문화
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서민 문화의 발달

1. 명‧청 대의 서민 문화
  1. 소비 문화의 발전
    • 경제력을 갖춘 상인들이 문화의 주류로 등장
    • 도시민의 취향 반영 : 통속적, 유흥과 오락
  2. 출판 문화의 발전
    • 인쇄술의 발달 → 대중 문학의 활성화(서유기, 삼국지연의, 수호지, 홍루몽 등), 농업‧과학‧의학‧지리 등 실용 지식의 전파
명‧청대 대중 문학
명대는 역사 소설, 민간에서 구전되는 전설이나 기괴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 백성의 억울한 일을 관가에서 해결해 주는 내용의 소설, 연애소설과 백성의 일상생활을 다룬 소설 등이 많이 출현했다. 특히 장편소설 창작이 아주 활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는 일대 명작이다. 나관중은 민간에 전해지는 삼국 이야기를 기초로 각종 문헌을 개편해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를 창작했다. 소설은 동한 말기 대소 군벌들이 위․촉․오 삼국을 정립한 후 전 중국의 지배권을 쟁탈하기 위한 정치․군사 투쟁을 벌인 일부 역사 상황을 묘사했다. 소설 속의 개성 있는 인물과 뛰어난 예술성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수호전>은 시내암이 민간에 전해지는 수호 이야기들을 장기간 수집한 기초 위에서 창작한 장편 역사 소설이다. 소설은 북송 말기의 부패와 암흑, 영웅들의 이야기이며 특히 인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오승은은 민간에 전해지는 당의 승려 현장이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소설 <서유기>를 창작했다. <서유기>는 손오공과 저팔계 등 인물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표현했으며, 여행 모험 이야기식의 구조로 이어진 구성 방식은 세계 문학에서도 일정한 대표성이 있다.
청대에도 소설 창작은 중국 고대 문학 발전의 최고에 이르렀고, 그 중 가장 빛나는 분야는 소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홍루몽>은 중국 고전 소설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홍루몽>은 조설근이 비참한 생활 속에서 그의 유년 시대를 회상하며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자서전적 애정소설로, 예술적 매력과 풍부하고 심오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각층에 무서운 기세로 보급되어 독자를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이를 모방한 소설이 많이 간행되었다. 황준헌은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은 유사 이래 최고의 소설이며, 해와 달과 함께 빛을 뿌리고 만고에 지지 않을 것이다.”
<서유기>, <수호전>, <삼국지연의>, <홍루몽>은 ‘중국 고전 장편 소설의 4대 명작’으로 불리고 있다.
 
주 260
각주 260) 홍루몽
조상의 공적에 의해 대대로 고관을 지내고, 황실의 인척이기도 한 상류 계급 가씨 가문의 귀공자 가보옥이 주인공이며, 같이 지내는 임대옥이 여주인공이 된다. 등장 인물만 500명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귀공자 가보옥은 학문은 등한시하고, 풍류는 즐겨하는 한량이다. 가보옥은 병약한 임대옥을 사랑하지만,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은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되며, 연애의 삼각 관계를 축으로 한다.
ko.wikipedia.org/wiki/홍루몽ko.wikipedia.org/wiki/홍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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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1. 명‧청 대의 서민 문화
  1. 행사‧축제‧공연 문화의 발전
    • 종교 시설의 행사(도시의 불교 사원, 도교 사원)와 명절 축제 : 도시민의 문화 생활에서 중심적 위치
    • 대규모 공연장 공연 : 곡예, 잡기, 마술 등
    • 희극 공연 : 농촌으로까지 순회 공연
명‧청대 명절 놀이
명‧청대 도시에는 여러 제사․종교 시설이 있어서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묘(寺廟)라고 통칭되는데, 크게는 사묘(祠廟)와 사관(寺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사묘는 신령이나 조상을 모신 사당을 의미하며, 사관은 절과 도관(道觀)을 의미한다. 이들이 사묘(寺廟)라고 통칭되는 것은 서로 기능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건륭15년(1750)에 제작한 <경성지도京城地圖>에는 내성․외성을 포함한 북경성에 총 1,320개의 사묘가 확인된다. 이런 크고 작은 사묘에서는 다양한 민속 축제와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묘시(廟市)’나 ‘절기장터’로 불리기도 하는 이런 활동의 묘회는 전통명절 혹은 불교나 도교 사원에서 절기에 드리는 제사에 맞춰, 사원 근처에서 열리는 노점 시장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에 거리 공연도 벌어지고 말타기나 활쏘기 등 전통놀이의 공연도 열렸다. 묘회는 청명절 7월 15일, 10월 1일의 삼대귀절(三大鬼節)에 제의가 성대하게 베풀어지고 그밖에는 매월 1일과 15일에는 일반인들의 기원 제의가 행해졌다. 이들의 묘회는 점차적으로 상업적이며 오락적인 성격의 시장으로 변천하였다. 그림은 청대 베이징 묘봉산 묘회(廟會)를 묘사한 민속화이다. 그림에서 참배자들이 길을 메우고 있고 물건이 가득하다. 또 각양각색의 놀이가 벌어지고 있다. 이 그림은 청대 베이징의 사회생활․풍속․신앙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주 261
각주 261) 명절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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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62
각주 262) 희극
경극
중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인 경극은 200여 년 전 각 지방에서 발달한 새로운 극들이 베이징에 올라와 상연된 데서 유래하였다. 노래와 춤, 무술과 곡예의 예술적 기교를 모두 갖춘 전통극이다. 경극에는 주로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문극과 활동적이면서 현란한 움직임으로 싸우는 장면을 표현하는 무극이 있다. 경극에서 가장 특색있는 예술은 안면 분장인데, 배우들의 얼굴색과 무늬로 인물의 신분과 직업 등을 알 수 있다. 빨간색은 충성과 용맹, 검은색은 정직함과 우직함 등을 나타낸다. 경극에는 세밀한 역할 분담이 있는데, 여성은 경극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보통 잘 생긴 젊은 남자가 여성의 역을 맡았다.
ko.wikipedia.org/wiki/경극ko.wikipedia.org/wiki/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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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2. 에도 시대의 서민 문화
  1. 상인 문화의 번성
    • 대도시의 발전 → 중산층으로 성장한 상인층
    • 조닌의 여가 활용 : 문학‧연극‧그림 등 예술 즐김 → 점차 다른 사회 계층에까지 확대
  2. 교육 기회의 확대
    • 경제적 수준 상승 → 전국적으로 학교 건립(데라코야) → 조닌이나 서민의 자제들도 글을 배움
주 263
각주 263) 데라코야
일본 에도 시대에 서민 자제에게 초보적인 읽기·쓰기·산술을 가르친 사설 교육기관이다.일본에서는 중세부터 사원(寺院)이 서민의 세속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서민의 자제는 6~7세부터 이 사원에 기거하면서 공부했으며, 이들을 데라코[寺子]라고 불렀다. 에도 시대가 되자 이 데라코 교육은 사원을 벗어나 세간에서 행해지게 되었지만 데라코라는 말은 그대로 남아, 일반적으로 자제를 교육하는 시설을 일컫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도시는 물론 전국 농어촌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1만 5,000여 개소에 이르렀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사립 소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데라코야http://ko.wikipedia.org/wiki/데라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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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2. 에도 시대의 서민 문화
  1. 조닌 문화의 발달
    • 문학 : 통속적이고 서민적인 남녀의 애정이 주요 소재, 주로 상인이 주인공으로 등장
    • 공연 : 분라쿠(전통적 인형극), 가부키(노래‧춤‧재주를 결합한 대중 연극), 노가쿠(가면극) 유행
    • 그림 : 우키요에(인기 있는 게이샤나 배우, 선정적인 풍속 풍경 등 묘사)
    • 고유 예술의 발달 : 꽃꽂이, 정원 장식, 도자기 등
주 264
각주 264) 가부키
에도 시대에 발생한 가부키(歌舞伎)는 문자 그대로 음악, 무용, 연기가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여러 스타일의 노래와 무용, 현대어 대사, 그리고 화려한 무대 변환이 볼 만하다. 초기에는 여자 배우들이 있었지만, 풍기상의 이유로 점점 금지되어 현재는 성년 남자만으로 구성되고 있다. 남자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온나가타(女形)라고 하는 다소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여성의 역을 표현하는 특수한 예능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가부키http://ko.wikipedia.org/wiki/가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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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65
각주 265) 우키요에
조닌 문화 중 에도에서는 게이샤, 배우, 스모 선수 등을 그린 우키요에(浮世畵)가 등장했다. 여기에서 ‘우키요’란 당대 민중의 풍속을 뜻한다. 처음에는 붓으로 그렸지만, 히시카와 모로노부가 목판의 우키요에 판화를 완성하면서 대량의 그림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우키요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복하지 않아 원화를 고가에 구입할 수 없었던 도회지의 서민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우키요에는 처음에는 마을의 일상 생활, 특히 유곽의 어여쁜 창부들, 스모 역사들과 유명한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나 특별한 예술 공연 등의 모습이나 특정한 장면를 주제로 많이 담았으며, 이후에 풍경화도 또한 널리 제작되게 되었다. 정치적인 주제 혹은 권력층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섹스 또한 공공연히 다루는 주제는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우키요에 작가들은 따로 춘화(春画)를 내기도 하여, 때로는 이 때문에 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우키요에 자체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사진․기계인쇄 등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쇠퇴하였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주목을 받아, 특히 프랑스의 인상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우키요에의 기법은, 여러 분야에 전해 내려졌으며,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주었다.
http://ko.wikipedia.org/wiki/우키요에http://ko.wikipedia.org/wiki/우키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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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3. 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1. 서민층의 성장
    • 서당을 통한 교육의 보급, 사회 경제적 변화, 신분 구조의 변동, 실학 사상의 영향 → 서민층의 자각에 바탕을 둔 문화 발전
  2. 그림과 공연의 유행
    • 풍속화(김홍도, 신윤복), 민화 유행 : 서민의 생활상과 의식 묘사
    •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탈춤 등 가면극 성행
주 266
각주 266) 서당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서당이 확산되어 하층 백성들의 자제들도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그것은 서당 훈장을 해서 생계를 꾸려야 했던 가난한 선비들이 늘어난 것과도 연관이 있다.
ko.wikipedia.org/wiki/서당ko.wikipedia.org/wiki/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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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67
각주 267) 김홍도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단원 김홍도(1745~1806)는 국가에 고용된 직업 화가인 ‘화원’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그는 정조의 초상을 그렸고, 정조로부터 “그림에 관한 한 김홍도에게 일임한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오늘날 전해지는 그의 작품 중에는 서민 생활을 그린 풍속화가 많지만, 산수화, 인물화 등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단원은 진실한 삶의 모습,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생활에 가까운 삶의 모습, 이웃들이 집 짓고 농사짓고 밥 먹고 천 짜고 놀고 쉬는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우물가에서 물 마시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기는 그의 작품은 강한 먹선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의 밝고 투명한 효과, 탁월한 공간 구성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래서 동시대인들은 그를 국화라 일컬었다.
ko.wikipedia.org/wiki/김홍도ko.wikipedia.org/wiki/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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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68
각주 268) 민화
호작도
까치와 호랑이가 한 구도에 배치되어 있는 ‘호작도’는 민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중국에서는 표범, 까치, 소나무를 그린다. 그 이유는 표범의 범이 중국의 발음으로는 보와 같고 소나무는 정월을, 까치는 기쁨을 의미하여 한자로 표현하면 '신년보회' 곧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소식만 오라'는 뜻이다. 이것이 조선에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 없는 표범대신 호랑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가 오래될수록 호랑이에 표범 무늬가 많이 섞여 있음에서 확인된다.
호랑이는 산신령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쁜 귀신을 막아 주고 착한 이를 도와주는 영물로 여겨져, 정초에 붙이는 세화의 주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까치 역시 길조에 해당하며 일년 내내 좋은 일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서낭신의 심부름꾼으로 서낭신의 메시지를 호랑이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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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3. 조선 후기의 서민 문화
  1. 대중 문학의 발달
    • 한글 소설 유행 : 한글 소설을 읽는 계층 증가 → 소설 대여, 필사 출판 사업 성행
    • 판소리 출현 :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 → 서민의 신분 상승 열망, 농촌의 빈부 격차에 대한 비판 의식, 양반 중심의 유교 사회 풍자 →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등
주 269
각주 269) 판소리
18세기부터 발달한 판소리 공연은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같이한다. 광대가 창을 하는 동안 고수는 장단을 맞춘다. 소리꾼인 광대가 노래에 해당하는 ‘창’을 하고, 창 사이사이에 설명조의 이야기인 ‘아니리’를 넣거나, 한 손에 부채나 손수건을 들고 몸짓으로 이야기의 상황을 표현하는 ‘발림’을 넣기도 한다. 청중은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운다. 소리꾼들은 고기잡이 철에는 어촌으로, 추수철에는 농촌으로 돌면서 구전 설화나 사설들을 토대로 자신들이 직접 서사화한 판소리 사설을 공연하였다. 이때 중심 관객인 서민층의 현실적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인물을 형성화함으로써 현실 수용의 폭을 넓혔다.
ko.wikipedia.org/wiki/판소리ko.wikipedia.org/wiki/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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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문화의 발달

명‧청 대
에도 시대
조선 후기
  • 경제력 갖춘 상인이 문화의 주류 → 소비 문화 발전
  • 인쇄술 발달 → 출판 문화 발전(실용 지식 전파, 대중 문학)
  • 종교 시설의 행사, 명절 축제, 희극 공연

  • 대도시의 중산층으로 성장한 조닌
  • 통속 문학, 공연 예술(가부키), 우키요에
  • 고유 예술 발전(꽃꽂이, 정원 장식)
  • 전국적 학교 설립 → 교육 기회의 확대

  • 서당, 신분구조 변동, 사회경제적 변화, 실학 → 서민층 성장
  • 한글 소설, 판소리 문학 등 대중 문학
  • 풍속화(김홍도, 신윤복), 민화 유행
  • 탈춤, 가면극 등


  • 각주 260)
    홍루몽조상의 공적에 의해 대대로 고관을 지내고, 황실의 인척이기도 한 상류 계급 가씨 가문의 귀공자 가보옥이 주인공이며, 같이 지내는 임대옥이 여주인공이 된다. 등장 인물만 500명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귀공자 가보옥은 학문은 등한시하고, 풍류는 즐겨하는 한량이다. 가보옥은 병약한 임대옥을 사랑하지만,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은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되며, 연애의 삼각 관계를 축으로 한다.
    ko.wikipedia.org/wiki/홍루몽ko.wikipedia.org/wiki/홍루몽 바로가기
  • 각주 261)
    명절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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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2)
    희극경극
    중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인 경극은 200여 년 전 각 지방에서 발달한 새로운 극들이 베이징에 올라와 상연된 데서 유래하였다. 노래와 춤, 무술과 곡예의 예술적 기교를 모두 갖춘 전통극이다. 경극에는 주로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문극과 활동적이면서 현란한 움직임으로 싸우는 장면을 표현하는 무극이 있다. 경극에서 가장 특색있는 예술은 안면 분장인데, 배우들의 얼굴색과 무늬로 인물의 신분과 직업 등을 알 수 있다. 빨간색은 충성과 용맹, 검은색은 정직함과 우직함 등을 나타낸다. 경극에는 세밀한 역할 분담이 있는데, 여성은 경극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보통 잘 생긴 젊은 남자가 여성의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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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3)
    데라코야일본 에도 시대에 서민 자제에게 초보적인 읽기·쓰기·산술을 가르친 사설 교육기관이다.일본에서는 중세부터 사원(寺院)이 서민의 세속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서민의 자제는 6~7세부터 이 사원에 기거하면서 공부했으며, 이들을 데라코[寺子]라고 불렀다. 에도 시대가 되자 이 데라코 교육은 사원을 벗어나 세간에서 행해지게 되었지만 데라코라는 말은 그대로 남아, 일반적으로 자제를 교육하는 시설을 일컫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도시는 물론 전국 농어촌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1만 5,000여 개소에 이르렀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사립 소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데라코야http://ko.wikipedia.org/wiki/데라코야 바로가기
  • 각주 264)
    가부키에도 시대에 발생한 가부키(歌舞伎)는 문자 그대로 음악, 무용, 연기가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여러 스타일의 노래와 무용, 현대어 대사, 그리고 화려한 무대 변환이 볼 만하다. 초기에는 여자 배우들이 있었지만, 풍기상의 이유로 점점 금지되어 현재는 성년 남자만으로 구성되고 있다. 남자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온나가타(女形)라고 하는 다소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으로 여성의 역을 표현하는 특수한 예능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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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5)
    우키요에조닌 문화 중 에도에서는 게이샤, 배우, 스모 선수 등을 그린 우키요에(浮世畵)가 등장했다. 여기에서 ‘우키요’란 당대 민중의 풍속을 뜻한다. 처음에는 붓으로 그렸지만, 히시카와 모로노부가 목판의 우키요에 판화를 완성하면서 대량의 그림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우키요에는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복하지 않아 원화를 고가에 구입할 수 없었던 도회지의 서민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우키요에는 처음에는 마을의 일상 생활, 특히 유곽의 어여쁜 창부들, 스모 역사들과 유명한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나 특별한 예술 공연 등의 모습이나 특정한 장면를 주제로 많이 담았으며, 이후에 풍경화도 또한 널리 제작되게 되었다. 정치적인 주제 혹은 권력층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섹스 또한 공공연히 다루는 주제는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우키요에 작가들은 따로 춘화(春画)를 내기도 하여, 때로는 이 때문에 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우키요에 자체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사진․기계인쇄 등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쇠퇴하였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주목을 받아, 특히 프랑스의 인상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우키요에의 기법은, 여러 분야에 전해 내려졌으며,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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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6)
    서당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전국적으로 서당이 확산되어 하층 백성들의 자제들도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그것은 서당 훈장을 해서 생계를 꾸려야 했던 가난한 선비들이 늘어난 것과도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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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7)
    김홍도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단원 김홍도(1745~1806)는 국가에 고용된 직업 화가인 ‘화원’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그는 정조의 초상을 그렸고, 정조로부터 “그림에 관한 한 김홍도에게 일임한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오늘날 전해지는 그의 작품 중에는 서민 생활을 그린 풍속화가 많지만, 산수화, 인물화 등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단원은 진실한 삶의 모습,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생활에 가까운 삶의 모습, 이웃들이 집 짓고 농사짓고 밥 먹고 천 짜고 놀고 쉬는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우물가에서 물 마시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기는 그의 작품은 강한 먹선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의 밝고 투명한 효과, 탁월한 공간 구성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래서 동시대인들은 그를 국화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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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8)
    민화호작도
    까치와 호랑이가 한 구도에 배치되어 있는 ‘호작도’는 민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중국에서는 표범, 까치, 소나무를 그린다. 그 이유는 표범의 범이 중국의 발음으로는 보와 같고 소나무는 정월을, 까치는 기쁨을 의미하여 한자로 표현하면 '신년보회' 곧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소식만 오라'는 뜻이다. 이것이 조선에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 없는 표범대신 호랑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가 오래될수록 호랑이에 표범 무늬가 많이 섞여 있음에서 확인된다.
    호랑이는 산신령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쁜 귀신을 막아 주고 착한 이를 도와주는 영물로 여겨져, 정초에 붙이는 세화의 주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까치 역시 길조에 해당하며 일년 내내 좋은 일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서낭신의 심부름꾼으로 서낭신의 메시지를 호랑이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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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269)
    판소리18세기부터 발달한 판소리 공연은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같이한다. 광대가 창을 하는 동안 고수는 장단을 맞춘다. 소리꾼인 광대가 노래에 해당하는 ‘창’을 하고, 창 사이사이에 설명조의 이야기인 ‘아니리’를 넣거나, 한 손에 부채나 손수건을 들고 몸짓으로 이야기의 상황을 표현하는 ‘발림’을 넣기도 한다. 청중은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운다. 소리꾼들은 고기잡이 철에는 어촌으로, 추수철에는 농촌으로 돌면서 구전 설화나 사설들을 토대로 자신들이 직접 서사화한 판소리 사설을 공연하였다. 이때 중심 관객인 서민층의 현실적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인물을 형성화함으로써 현실 수용의 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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