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금평 패총
입지
1992년 처음 발견되어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함.
유적개관
조사된 유구는 5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주거지가 폐기된 후 그 위에 패총이 형성되어 있음.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로 나뉘는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지름 4m 내외 크기의 원형 바닥 중앙에 타원형 함몰부와 2개의 기둥구멍이 있고, 원삼국시대의 주거지는 원형 혹은 타원형으로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보다 약간 더 큼. 주거지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은 거의 없고 그 위에 버려진 패총 속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됨.
출토유물
* 시루, 철부, 철촉, 복골, 골각기, 토제구슬, 석도, 국자형토기, 소형토기, 시루 등
참고문헌
「보성금평패총(寶城金坪貝塚)」
해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척령리 182번지 일대에 위치한 유적이다. 유적은 해발 20~15m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구릉 능선으로부터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벌교만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1기와 원삼국시대 집자리 2기, 구덩유구[竪穴遺構] 2기, 도랑유구[溝狀遺構] 3기가 확인되었다. 이밖에 조개무지가 원삼국시대의 집자리와 구덩유구 상부에서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평면 원형이며 내부 중앙에서 2개의 기둥 자리가 확인되고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가 출토되었는데,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볼 때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유구로 판단된다.
원삼국시대의 집자리 2기는 모두 평면 원형이며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덩유구 가운데 1기는 평면 사다리꼴, 나머지 1기는 네모꼴을 이루는데, 이 중 대형의 사다리꼴 구덩유구 내부에 조개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밖에 3기의 도랑유구는 5~3m의 간격을 이루며 나란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동일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주로 단단한 민무늬토기[硬質無文土器]와 두드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조개무지는 원삼국시대의 집자리, 구덩유구, 도랑유구가 모두 폐기된 이후에 형성되었다. 총 11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조개의 종류는 굴과 꼬막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출토 유물은 다양한 종류의 단단한 민무늬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 동물형토제품, 철기, 손칼자루[刀子柄], 점뼈[卜骨] 등이 확인되었다.
금평 유적은 전라남도 남해안 지역의 원삼국시대 문화를 복원하는 데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의 비교를 통하여 영산강 유역이나 보성강 유역 등 내륙 지역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1기와 원삼국시대 집자리 2기, 구덩유구[竪穴遺構] 2기, 도랑유구[溝狀遺構] 3기가 확인되었다. 이밖에 조개무지가 원삼국시대의 집자리와 구덩유구 상부에서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평면 원형이며 내부 중앙에서 2개의 기둥 자리가 확인되고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가 출토되었는데,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을 볼 때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유구로 판단된다.
원삼국시대의 집자리 2기는 모두 평면 원형이며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구덩유구 가운데 1기는 평면 사다리꼴, 나머지 1기는 네모꼴을 이루는데, 이 중 대형의 사다리꼴 구덩유구 내부에 조개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밖에 3기의 도랑유구는 5~3m의 간격을 이루며 나란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동일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주로 단단한 민무늬토기[硬質無文土器]와 두드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조개무지는 원삼국시대의 집자리, 구덩유구, 도랑유구가 모두 폐기된 이후에 형성되었다. 총 11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조개의 종류는 굴과 꼬막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출토 유물은 다양한 종류의 단단한 민무늬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 동물형토제품, 철기, 손칼자루[刀子柄], 점뼈[卜骨] 등이 확인되었다.
금평 유적은 전라남도 남해안 지역의 원삼국시대 문화를 복원하는 데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의 비교를 통하여 영산강 유역이나 보성강 유역 등 내륙 지역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