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답돈(蹋頓), 누반(樓班) 등을 정벌하고 난 뒤 나머지 무리가 항복함
후에 누반이 자라자 초왕 [소복연]은 그의 부중을 이끌고 누반을 받들어 선우로 옹립하니, 당돈은 [그의 부하가 되었지만 여전히] 왕이 되었다.주 001그런데 답돈은 계교와 방책을 많이 세웠다.주 002
광양[군 사람인]주 003
염유(閻柔)
주 004
후에 원상이 패하여주 007 답돈에게 달아나주 008그의 세력을 빌려 다시 기주(冀州)를 수복하려고 꾀하였다.주 009이때 태조 [조조]주 010는 하북(河北)을 평정하였는데, 이에 염유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태조에게] 귀부하니, 주 011[태조는] 드디어 염유를 교위로 삼았다. 여전히 한나라의 사절(使節)주 012을 지니고 예전처럼 광녕[현](廣寗縣) 주 013을 치소(治所)로 삼아 다스렸다.주 014
건안(建安) 11년(206)에주 015 태조는 스스로 유성[현](柳城縣) 주 016에서 답돈을 정벌하였다.주 017군대를 숨기고 길을 속여서 [진군하였는데 답돈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100여 리도 이르지 않는 [가까운 곳에 도달하자 비로소] 적들이 이를 깨달았다. 원상과 답돈은 무리를 이끌고 범성(凡城) 주 018에서 맞아 싸웠는데, 군대와 말이 무척 많았다. 태조는 높은 곳에 올라 오환의 진(陳)주 019을 바라보고 군대에게 진군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환군의] 작은 움직임까지 관찰하다가 이에 그 무리를 습격하여 격파하니, 진에 임하여 답돈의 머리를 베었다. [이에 오환의] 죽은 자가 들을 뒤덮었다.주 020 속부환(速附丸)과 누반, 오연 등은 요동[군]으로 달아났는데, 주 021 요동[군]에서는 그들 모두를 참하여 그 머리를 [태조의 진영에] 보냈다.주 022그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항복하였다. 유주와 병주에서 염유가 통솔하던 오환 만여 락을 모두 중원(中原)주 023으로 옮겼다. 또 그 후왕(侯王)과 대인의 종중(種衆)을 거느리고 더불어 정벌(征伐)에 나섰다. 이때부터 3군의 오환은 천하(天下)에서 유명한 기병[名騎]이 되었다.[배송지주1]주 024
각주 004)
는 젊어서 오환과 선비(鮮卑) 사이로 들어가 숨어살았는데, 오환과 선비인들에게주 005믿음을 얻었다. 염유는 이에 선비 무리를 이끌고 오환교위였던 형거(邢擧)를 살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니, 원소는 염유에게 은총을 내리고 위무하여 북변을 편안하게 하였다.주 006
閻柔:三國時代 廣陽郡(현재 北京城 서남쪽) 사람이다. 젊어서 烏丸人과 鮮卑人 사이에 섞여 살았으며 부족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後漢末 幽州牧 劉虞의 從事 鮮于輔 등의 추대로 烏丸司馬가 되어 胡·漢 수만을 이끌고 公孫瓚의 部將 鄒丹을 격파하였다. 이에 烏丸校尉 邢擧를 살해하고 烏丸校尉가 되었으며 袁紹의 총애를 받았고 北邊을 安撫하였다. 建安 5년(200)에 사자를 보내 曹操을 만나 투항하여 烏丸校尉에 임명되었다. 曹操가 河北을 평정하자 部曲과 鮮卑을 이끌고 名馬를 曹操의 군대에게 바쳤다. 三郡烏丸 정벌에 종군하여 공을 세워 關內侯에 봉해졌고, 曹操는 그를 매우 총애하였다. 거느렸던 幽州와 幷州의 烏丸 만여 落을 이끌고 中原으로 遷徙하였다. 建安 17년(212)에 鮮卑 軻比能部 3천여 騎와 曹操를 따라 河間郡에서 田銀을 정벌하는 데 참전하였다. 曹魏 文帝시기 度遼將軍에 임명되고 縣侯에 봉해졌다.
후에 원상이 패하여주 007 답돈에게 달아나주 008그의 세력을 빌려 다시 기주(冀州)를 수복하려고 꾀하였다.주 009이때 태조 [조조]주 010는 하북(河北)을 평정하였는데, 이에 염유는 선비와 오환을 이끌고 [태조에게] 귀부하니, 주 011[태조는] 드디어 염유를 교위로 삼았다. 여전히 한나라의 사절(使節)주 012을 지니고 예전처럼 광녕[현](廣寗縣) 주 013을 치소(治所)로 삼아 다스렸다.주 014
건안(建安) 11년(206)에주 015 태조는 스스로 유성[현](柳城縣) 주 016에서 답돈을 정벌하였다.주 017군대를 숨기고 길을 속여서 [진군하였는데 답돈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100여 리도 이르지 않는 [가까운 곳에 도달하자 비로소] 적들이 이를 깨달았다. 원상과 답돈은 무리를 이끌고 범성(凡城) 주 018에서 맞아 싸웠는데, 군대와 말이 무척 많았다. 태조는 높은 곳에 올라 오환의 진(陳)주 019을 바라보고 군대에게 진군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환군의] 작은 움직임까지 관찰하다가 이에 그 무리를 습격하여 격파하니, 진에 임하여 답돈의 머리를 베었다. [이에 오환의] 죽은 자가 들을 뒤덮었다.주 020 속부환(速附丸)과 누반, 오연 등은 요동[군]으로 달아났는데, 주 021 요동[군]에서는 그들 모두를 참하여 그 머리를 [태조의 진영에] 보냈다.주 022그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항복하였다. 유주와 병주에서 염유가 통솔하던 오환 만여 락을 모두 중원(中原)주 023으로 옮겼다. 또 그 후왕(侯王)과 대인의 종중(種衆)을 거느리고 더불어 정벌(征伐)에 나섰다. 이때부터 3군의 오환은 천하(天下)에서 유명한 기병[名騎]이 되었다.[배송지주1]주 024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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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閻柔:三國時代 廣陽郡(현재 北京城 서남쪽) 사람이다. 젊어서 烏丸人과 鮮卑人 사이에 섞여 살았으며 부족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後漢末 幽州牧 劉虞의 從事 鮮于輔 등의 추대로 烏丸司馬가 되어 胡·漢 수만을 이끌고 公孫瓚의 部將 鄒丹을 격파하였다. 이에 烏丸校尉 邢擧를 살해하고 烏丸校尉가 되었으며 袁紹의 총애를 받았고 北邊을 安撫하였다. 建安 5년(200)에 사자를 보내 曹操을 만나 투항하여 烏丸校尉에 임명되었다. 曹操가 河北을 평정하자 部曲과 鮮卑을 이끌고 名馬를 曹操의 군대에게 바쳤다. 三郡烏丸 정벌에 종군하여 공을 세워 關內侯에 봉해졌고, 曹操는 그를 매우 총애하였다. 거느렸던 幽州와 幷州의 烏丸 만여 落을 이끌고 中原으로 遷徙하였다. 建安 17년(212)에 鮮卑 軻比能部 3천여 騎와 曹操를 따라 河間郡에서 田銀을 정벌하는 데 참전하였다. 曹魏 文帝시기 度遼將軍에 임명되고 縣侯에 봉해졌다.
-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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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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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22)
- 각주 023)
- 각주 024)
색인어
- 이름
- 누반, 초왕, 소복연, 누반, 당돈, 답돈, 염유(閻柔), 염유, 형거(邢擧), 원소, 염유, 원상, 답돈, 태조, 조조, 염유, 태조, 태조, 염유, 태조, 답돈, 답돈, 원상, 답돈, 태조, 답돈, 속부환(速附丸), 누반, 오연, 태조, 염유, 배송지
- 지명
- 광양[군, 기주(冀州), 하북(河北), 한나라, 광녕[현](廣寗縣), 유성[현](柳城縣), 범성(凡城), 요동[군], 요동[군], 유주, 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