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기(阿保機)가 스스로 황제(天皇王)라 칭하고 발해의 요동(遼東)을 토벌함
천우(天祐) 말, 아보기(阿保機)는 곧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중국의 관호(官號)를 썼다. 그들은 오랫동안 목축을 따라 [이동해] 평소에는 [거처하는] 읍실(邑屋)이 없었으나 연(燕) [일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얻어 곧 막북(漠北)에서 성곽궁실(城郭宮室)[에 관한] 제도를 행했는데 [그 곳은] 유주(幽州)에서 삼천 리 떨어져 있었고 그 읍(邑)을 이름하여 서루읍(西樓邑)
주 001이라 하였으며 옥문(屋門)은 모두 동쪽을 향해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살던 장막(帳幕)이 모두 동쪽을 향했던 제도[車帳之法]와 같았다. 성 남쪽에는 따로 성(城)을 쌓아 한인(漢人)들로 [그 곳을] 채웠는데 이름하여 한성(漢城)
주 002이라 하였고 성 가운데에는 불사(佛寺) 세 [곳]이 있었는데 승려[僧尼]는 천 명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아보기를 불러 천황왕(天皇王)이라 했다.
[후당(後唐) 장종(莊宗)] 동광(同光) 연간(923~926), 아보기는 [자신들의] 땅을 개척하겠다는 뜻이 절실하여주 003 병사를 거두어 대대적으로 공격하려 했으나 발해(渤海)
주 004가 그[의] 뒤를 쫓아올까 근심하였다. [동광] 3년(925),주 005 그의 무리를 들어 발해의 요동(遼東)을 토벌하고주 006 독뢰(禿餒)와 노문진(盧文進)에게 명하여 영[주](營州)와 평[주](平州) 등의 주(州)에 웅거(雄據)하게 하여 우리의 연계(燕薊) [일대]를 어지럽혔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색인어
- 이름
- 아보기(阿保機), 아보기, 장종(莊宗), 아보기, 독뢰(禿餒), 노문진(盧文進)
- 지명
- 중국, 막북(漠北), 유주(幽州), 서루읍(西樓邑), 한성(漢城), 후당(後唐), 발해(渤海), 발해, 요동(遼東), 영[주](營州), 평[주](平州), 연계(燕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