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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한원

평곽에는 거처를 마련하였으니, 풍홍의 실책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평곽에는 거처를 마련하였으니, 풍홍의 실책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고려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평곽성은 지금 건안성주 001
각주 001)
오늘날 중국 遼寧省 蓋州市 靑石嶺鎭 高麗城子村의 高麗城子山城에 비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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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이름한다. 나라 서쪽에 있다.” 본래 한의 평곽현주 002
각주 002)
『漢書』 地理志 및 『後漢書』 郡國志에 모두 遼東郡의 속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新唐書』 地理志에 인용된 「道里記」에는 遼陽의 安東都護府를 기점으로 “서쪽으로 建安城까지 3백 리이며 본래의 평곽현이다(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三百里 故平郭縣也)”라는 기록도 유의된다. 蓋州市 시가의 구 蓋縣縣城 하층에서 漢代 고성이 발견되어 이를 평곽현 성지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東潮·田中俊明, 『高句麗の歷史と遺蹟』, 中央公論社, 1995, 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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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한서』 지리지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요동군에 속한다. 철관과 염관이 있다.” 『속한서』 군국지주 003
각주 003)
『續漢書』는 西晉의 司馬彪가 撰한 것으로 모두 18편이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전하는 『後漢書』의 八志는 이를 취해 보충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後漢書』 郡國志 또한 『續漢書』의 志를 따서 보충한 것이므로, 『續漢書』 郡國志의 逸文을 『後漢書』 郡國志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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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다.주 004
각주 004)
『後漢書』 郡國志에서는 단지 ‘有鐵’이라고 하여 ‘鹽官’의 두 글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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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국춘추』주 005
각주 005)
北魏代 崔鴻이 편찬한 5호16국시대 역사서. 현전하는 『十六國春秋』는 明 萬曆 연간에 屠喬孫·項琳之가 『晉書』, 『北史』, 『冊府元龜』, 『藝文類聚』, 『太平御覽』 등에서 16국의 史事를 집출하여 교정을 보고 100권으로 만들어 저자 崔鴻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僞作 논란이 있다. 그 외 『漢魏叢書』에 보존된 판본으로 16국마다 각각 一錄씩 16권이 따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 역시 明代에 『晉書』 載記를 근거로 編寫한 것으로 위작이다. 또 淸代 湯球가 編寫한 『十六國春秋輯補』도 전하는데, 이는 屠喬孫·項琳之에 의해 만들어진 『十六國春秋』를 저본으로 하면서도 재차 각종 유서에 인용된 逸文을 보충하여 완성한 것이다. 여기서는 屠喬孫·項琳之가 각종 사서에서 史事를 집출하여 교정을 본 『十六國春秋』의 원문을 참고자료로 제시하였다(『十六國春秋』 원문 출처는 『欽定四庫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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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북연의 풍홍이 대흥 6년(436) [북]위에게 격파되니 마침내 [고]구려로 도망하였다. [고구려는] [풍]홍을 평곽에 거주하게 하였다주 006
각주 006)
이 사건과 관련하여서는 『十六國春秋』 이외에도 『資治通鑑』 卷123 文帝 元嘉13年 9月조 및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長壽王 26年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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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성이다.
 
• 참고
『漢書』 卷28下 地理志 遼東郡 遼東郡 秦置 屬幽州 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 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 … 平郭 有鐵官鹽官
『後漢書』 志23 郡國志(『續漢書』 郡國志) 遼東郡 遼東郡 秦置 雒陽東北三千六百里 十一城 戶六萬四千一百五十八 口八萬一千七百一十四 襄平新昌無慮望平侯城安市平郭有鐵西安平汶番汗沓氏
『十六國春秋』 卷99 北燕錄2 太興六年 … 秋九月 高麗不送弘於魏 遣使奉表稱藩 乞與馮弘 俱奉王化 世祖以高麗故違詔旨 議擊之 初弘至遼東 高麗王遣使勞之曰 龍城王馮君 爰適野次 士馬勞乎 弘慚怒 稱制答讓之 高麗王乃處之於平郭 尋徙北豐
『三國史記』 卷18 高句麗本紀6 長壽王 二十六年 春三月 初燕王弘至遼東 王遣使勞之曰 龍城王馮君 爰適野次 士馬勞乎 弘慙怒 稱制讓之 王處之平郭 尋徙北豊
『資治通鑑』 卷123 文帝 元嘉 13年 9月 九月 高麗不送燕王於魏 遣使奉表稱 當與馮弘俱奉王化 魏主以高麗違詔 議擊之 將發隴右騎卒 劉絜曰 秦隴新民 且當優復 俟其饒實 然後用之 樂平王丕曰 和龍新定 宜廣修農桑以豐軍實 然後進取 則高麗一舉可滅也 魏主乃止

  • 각주 001)
    오늘날 중국 遼寧省 蓋州市 靑石嶺鎭 高麗城子村의 高麗城子山城에 비정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漢書』 地理志 및 『後漢書』 郡國志에 모두 遼東郡의 속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新唐書』 地理志에 인용된 「道里記」에는 遼陽의 安東都護府를 기점으로 “서쪽으로 建安城까지 3백 리이며 본래의 평곽현이다(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三百里 故平郭縣也)”라는 기록도 유의된다. 蓋州市 시가의 구 蓋縣縣城 하층에서 漢代 고성이 발견되어 이를 평곽현 성지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東潮·田中俊明, 『高句麗の歷史と遺蹟』, 中央公論社, 1995, 371쪽). 바로가기
  • 각주 003)
    『續漢書』는 西晉의 司馬彪가 撰한 것으로 모두 18편이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전하는 『後漢書』의 八志는 이를 취해 보충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後漢書』 郡國志 또한 『續漢書』의 志를 따서 보충한 것이므로, 『續漢書』 郡國志의 逸文을 『後漢書』 郡國志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後漢書』 郡國志에서는 단지 ‘有鐵’이라고 하여 ‘鹽官’의 두 글자는 없다. 바로가기
  • 각주 005)
    北魏代 崔鴻이 편찬한 5호16국시대 역사서. 현전하는 『十六國春秋』는 明 萬曆 연간에 屠喬孫·項琳之가 『晉書』, 『北史』, 『冊府元龜』, 『藝文類聚』, 『太平御覽』 등에서 16국의 史事를 집출하여 교정을 보고 100권으로 만들어 저자 崔鴻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僞作 논란이 있다. 그 외 『漢魏叢書』에 보존된 판본으로 16국마다 각각 一錄씩 16권이 따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 역시 明代에 『晉書』 載記를 근거로 編寫한 것으로 위작이다. 또 淸代 湯球가 編寫한 『十六國春秋輯補』도 전하는데, 이는 屠喬孫·項琳之에 의해 만들어진 『十六國春秋』를 저본으로 하면서도 재차 각종 유서에 인용된 逸文을 보충하여 완성한 것이다. 여기서는 屠喬孫·項琳之가 각종 사서에서 史事를 집출하여 교정을 본 『十六國春秋』의 원문을 참고자료로 제시하였다(『十六國春秋』 원문 출처는 『欽定四庫全書』). 바로가기
  • 각주 006)
    이 사건과 관련하여서는 『十六國春秋』 이외에도 『資治通鑑』 卷123 文帝 元嘉13年 9月조 및 『三國史記』 高句麗本紀 長壽王 26年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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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곽에는 거처를 마련하였으니, 풍홍의 실책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자료번호 : hw.k_0002_006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