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문(陳德文)이 각지의 풍속을 채집하여 시가(詩歌)를 만들어 바친 일과 영락(永樂) 연간에 와서야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는 글
성조가 즉위하여 관원을 보내어 새서와 채폐를 가지고 가서 그 왕에게 하사하였으나, 여전히 보명(報命)주 001하지 않았다. 영락 5년(1407)에 부안 등이 돌아왔다. 진덕문은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각국의 추장에게 입조하여 공물을 바칠 것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길이 멀다는 이유로 [중국에] 이르지 않았는데, 또한 이해에 비로소 돌아왔다. 진덕문은 보창(保昌)
주 002 출신으로 각 지방의 풍속을 채집하여 시가(詩歌)를 만들어 바치니, 영락제가 가상히 여기고 첨도어사(僉都御史)주 003로 발탁하였다. 이듬해(1408)에 다시 부안을 파견하여 새서와 폐백을 가지고 합렬에 가도록 하니, 그 추장 사합노파도아(沙哈魯把都兒)
주 004가 사신을 보내어 부안을 따라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다. [영락] 7년(1409)에 경사에 이르렀으며, 다시 [부안에게] 명하여 하사품을 가지고 그 사신과 함께 동행하여 보답하도록 하였다. 이듬해(1410) 그 추장이 사신을 보내어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성조, 부안, 진덕문, 진덕문, 영락제, 부안, 사합노파도아(沙哈魯把都兒), 부안
- 지명
- 중국, 보창(保昌), 합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