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洪武) 연간 관원을 보내 조서를 내려 효유하였으나 길이 먼 등의 사유로 이르지 않았다는 내용
홍무 연간(1368~1398)에 살마아한 및 별실팔리가 모두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으나, 합렬은 길이 멀어 이르지 않았다. [홍무] 25년(1392)에 관원을 보내어 조서를 내려 그 왕을 효유하고, 문기·채폐를 하사했지만, 그래도 이르지 않았다. [홍무] 28년(1395)에 급사중 부안·곽기(郭驥) 등을 보내어 사졸(士卒) 1,500명을 데리고 가도록 하였으나, 살마아한에게 억류되어 도달하지 못하였다. [홍무] 30년(1397)에 다시 북평(北平)주 001 안찰사(按察使)주 002
진덕문(陳德文)
주 003
각주 003)
등을 보냈지만, 또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였다.陳德文(?~1414): 一名 瑩中이라고도 하는데, 字는 文石이다. 廣東 保昌 사람으로서 洪武 연간(1368~1398)에 文學으로 천거되어 台州府의 通判에 除授되었다. 이후 계속 승진하여 北平按察使가 되었다. 洪武 30년(1397)에 西域의 撒馬兒罕 등지에 出使하여 12년을 머물며 諸國을 遍歷하면서 각지의 풍속을 모아 詩歌를 만들었다. 귀국 후에 이를 永樂帝에게 바치자 僉都御史로 발탁되었다. 후에 『西域志』를 수찬함에 있어 陳德文이 작성한 글에 많이 의거하였다. 한편 永樂帝를 수행하여 北元을 공략하는 데 공을 세워 左僉都御史로 승진되었다.
- 각주 001)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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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陳德文(?~1414): 一名 瑩中이라고도 하는데, 字는 文石이다. 廣東 保昌 사람으로서 洪武 연간(1368~1398)에 文學으로 천거되어 台州府의 通判에 除授되었다. 이후 계속 승진하여 北平按察使가 되었다. 洪武 30년(1397)에 西域의 撒馬兒罕 등지에 出使하여 12년을 머물며 諸國을 遍歷하면서 각지의 풍속을 모아 詩歌를 만들었다. 귀국 후에 이를 永樂帝에게 바치자 僉都御史로 발탁되었다. 후에 『西域志』를 수찬함에 있어 陳德文이 작성한 글에 많이 의거하였다. 한편 永樂帝를 수행하여 北元을 공략하는 데 공을 세워 左僉都御史로 승진되었다.
색인어
- 이름
- 부안, 곽기(郭驥), 진덕문(陳德文)
- 지명
- 살마아한, 별실팔리, 합렬, 살마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