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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부모산성

父母山城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10-1/ 흥덕구 지동동 71 일대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충청북도 청주시 비하동과 강서동, 휴암동 및 청원군 항내면 학천리, 서촌동, 지동동 일원의 부모산(해발 231m) 일대 봉우리에 입지한다.
유적개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유적으로, 북문지와 수구 일대에서 고구려계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출토유물
* 토기
참고문헌
약보고서
해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飛下洞)과 지동동(池東洞)에 위치한 해발 232m 부모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정상부 봉우리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석축산성이며, 전체 둘레는 약 1,135m-1,185m에 달한다. 부모산은 아양산(我養山)으로 부르던 산으로, 이 성곽을 ‘아양산성(我養山城), 산양성(山陽城)으로도 부른다. 고려 말 몽고 침입 때 피난민들이 산성으로 피했는데, 성안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모두 살 수 있었다는 설화에서 기인하여 부모와 같은 산, 나를 키워 준 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성 내부에 어머니의 젖과 같다하여 모유정(母乳井)이라는 수원이 존재한다. 이 우물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다는 설화로도 전해지고 있다.
1486년 경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고적 편에 “부모성은 주(州) 서쪽 15리에 있다. 돌로 쌓았고, 둘레가 2,427척이며, 성 내부에 큰 연못(大池)가 있다. 현재는 폐(廢)되었다.”라고 기록신증동국여지승람 제15권>충청도(忠淸道)되어 있어, 산성은 적어도 고려 이전에 축조 사용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이미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모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정밀조사는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재연구소, 2004-2006년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하였다.
성벽은 경사면을 이용하여 쌓아올리다가 일정한 높이에 이르면 안쪽에서 다시 쌓아올리는 소위 ‘내외 겹축 석축성벽’ 방식이다. 높이는 6m 내외이며 성벽의 폭은 6.4m 정도로 조사되었다. 또 성벽의 바깥 면에는 성벽을 보강하기 위해서 계단식으로 보강 구조물을 축조하였는데, 이러한 형태는 중부 이남지역에서는 처음 조사된 것이다.
동서남북 4곳에 통로 혹은 문터 흔적이 있고, 동쪽과 북쪽에는 물이 나가는 수구(水口)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 외에 인접한 산줄기를 따라서는 관측과 방어를 위한 보루(堡壘)들이 존재하고 있었음과, 산성 남쪽으로는 고분군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성 내부에서는 주로 백제의 토기와 신라 토기들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6-7세기 경 기종들이며, 북문 터 부근에서는 고구려 토기들도 확인되었다.
산성이 위치한 지역은 미호천 변의 넓은 평야지역을 조망하기 유리해서 청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발굴조사 결과 산성이 조성되기 이전 원삼국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보이며, 백제시대에는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이 지역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에 돌로 다시 개축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의 주체나 운용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원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전과 상호 교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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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7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