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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 구지 기록 하(下) 목록

△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 기록 하(下) 목록

1. 잇켄이 끝나기 전 로주에게 올린 서한 및 답변의 사본.
2. 로주를 만나 뵙고 올린 5개조 글의 사본.
3. 잇켄이 끝난 이후 로주를 만나 뵙고 올린 서류의 사본.
4. 잇켄 시작 시에 여러 사람에게 올린 7개조 문건의 사본.
5. 부젠(豊前)의 잘못(非道)에 관한 11개조.
6. 제가 청원해서 부젠이 쇼타유(諸大夫)에 서임된 일과 부젠이 서약한 정황.
7. 부젠이 잘못한 것에 관해 보초로(方長老)로부터 들은 5개조의 사본.
8. 1624(寬永 1)년 신사(信使) 도해 때 쇼군이 신사에게 하사한 병풍을 바꾸어서 취한 자의 명부에 관하여.
9. 보초로가 조선에 도해했을 때 선위사(宣慰使)가 부산에 내려온 일.
10. 부젠의 송사선(送使船)에 관해 사카이 사누키노카미님이 보낸 편지의 사본.
11. 보초로가 조선에서 귀국한 것을 아뢴 것에 관해 사카이 사누키노카미님이 보낸 서한의 사본.
12. 부젠의 영지 1,000석(石)에 관해 이나 한주로(伊奈判十郞)·오가와치 긴베(大河內金兵衛)에게 보낸 문서의 사본.
13. 요시토시(義智)주 001
각주 001)
쓰시마 번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 1568~1615). 쓰시마 소(宗) 가문의 20대 당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규슈 정벌 때 복속하여 영지를 보전하였다. 장인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와 함께 임진왜란에도 참가하였으며,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 때는 서군(西軍)의 편에 섰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로부터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지시받아 패전의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포로 송환 등 조선과의 교섭 끝에 1609년 조선과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양국의 국교를 회복하는 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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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야나가와 시모쓰케(柳川下野)주 002
각주 002)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 ?~1605). 시게오키의 조부. 시모쓰케노카미(下野守). 쓰시마 소씨 가문의 가신으로, 본래 로닌 출신이었으나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었다. 규슈를 정벌하던 히데요시에게 항복의 사절로서 알현할 것을 지시받아 가로격으로 승진하여 교섭에 임하였으며, 성공적으로 교섭을 성사시켰다. 임진왜란 시기에도 승려 게이테쓰 겐소(景轍玄蘇)와 함께 조선에 건너가 교섭하였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국교 회복에도 공헌한 바 있다. 그 공로를 조선으로부터도 인정받아 그가 죽은 뒤 향화(香火)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위패를 모신 류호인(流芳院)의 명의로 세견선 한 척을 파견할 권리가 부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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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영지를 주었을 때의 증명문서 및 사자(使者)에 관하여.
14. 잇켄에 대해 모은 글 3개조.
15. 나의 여동생이 부젠과 이혼한 일주 003
각주 003)
부젠의 아내는 소 요시나리의 이복 동생 미야히메(宮姬)로, 요시나리와의 불화, 비방전이 본격화되자 부젠은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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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교토(京都)에서 로주에게 아뢴 일 및 편지의 사본.
16. 잇켄이 끝난 후 부젠의 부하들에게 지시한 문서.
17. 1634(寬永 11)년 2월 25일 막부에 보낸 조서(條書)의 사본.
18. 1627(寬永 4)년의 일기(日記)에서 발췌한 4개조.
19. 1636(寬永 13)년 도보 사자에몬(唐坊佐左衛門)이 조선에서 귀국하여 에도에 올라갔을 때의 각서(覺書) 사본.
야나가와 시게오키 구지 기록 하(下) 끝

  • 각주 001)
    쓰시마 번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 1568~1615). 쓰시마 소(宗) 가문의 20대 당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규슈 정벌 때 복속하여 영지를 보전하였다. 장인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600)와 함께 임진왜란에도 참가하였으며,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 때는 서군(西軍)의 편에 섰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로부터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지시받아 패전의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포로 송환 등 조선과의 교섭 끝에 1609년 조선과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양국의 국교를 회복하는 데 공헌하였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 ?~1605). 시게오키의 조부. 시모쓰케노카미(下野守). 쓰시마 소씨 가문의 가신으로, 본래 로닌 출신이었으나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되었다. 규슈를 정벌하던 히데요시에게 항복의 사절로서 알현할 것을 지시받아 가로격으로 승진하여 교섭에 임하였으며, 성공적으로 교섭을 성사시켰다. 임진왜란 시기에도 승려 게이테쓰 겐소(景轍玄蘇)와 함께 조선에 건너가 교섭하였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국교 회복에도 공헌한 바 있다. 그 공로를 조선으로부터도 인정받아 그가 죽은 뒤 향화(香火)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위패를 모신 류호인(流芳院)의 명의로 세견선 한 척을 파견할 권리가 부여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부젠의 아내는 소 요시나리의 이복 동생 미야히메(宮姬)로, 요시나리와의 불화, 비방전이 본격화되자 부젠은 일방적으로 이혼을 선언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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