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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1. 유적의 입지와 특징

크라스키노 성은 연해주 남부지역 하산지구의 추카노프카(얀치헤) 강 우안 하구부분에 위치한다. 이곳은 해안선이 작은 만들로 이루어진 엑스페지치야 만의 북쪽에 해당된다(도면 1~4). 해안선과 엑스페지치야 만에서 크라스키노 성까지의 거리는 400m이며, 가장 가까운 작은 만에서 성까지의 거리는 약 100m이다. 성은 크라스키노 마을에서는 남서쪽으로 2km 떨어져 있다.
크라스키노 성의 평면 형태는 약간 어긋난 장방형이다. 북벽은 모양이 궁형이며 , 남벽과 서벽이 만나는 부분도 궁형에 가깝다(도면 5, 6). 성벽의 전체 길이는 1,380m에 달한다. 성벽 내부의 면적은 약 12.6ha이다. 성벽의 현존 높이는 1.5~2m이다. 성벽은 표토로 덮여있으나, 몇몇 장소에서는 성벽 능선을 따라 석축 골격이 확인된다. 성벽의 너비는 위 부분은 1m, 기저부는 10~12m이다. 성벽의 축선은 20도 편동한 북향이다. 성벽에는 3개의 문지(남문지, 동문지, 서문지)가 있는데, 모두 외측이 장방형의 옹성에 의해 방어되고 있다. 동문지와 서문지에는 출구가 남쪽을, 즉 엑스페지치야만 쪽을 향하며, 남문지의 출구는 추카노프카 강 하구 쪽을 향한다.
성 내부에서 가장 높은 곳은 북서쪽 부분이다. 둔덕의 능선은 궁형을 이루며 서문지에서 북서쪽 부분을 지나 동문지까지 이어진다. 가장 낮은 곳은 남문지에 인접한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성 안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레벨 차이는2~ 2.5m이다. 남문지에서 북벽 방향으로는 성 안을 동부와 서부 두 부분으로 나누는 넓은(너비 30m) 도로가 확인된다. 둔덕 부분에는 큰 돌들, 즉 초석 건축과 사찰 건축의 초석들이 집중되어 있다.
성은 두 번에 걸쳐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19세기 말에 한인 농민들이 성의 북쪽 부분에 농가를 세웠고,주 001
각주 001)
1864년부터 포시예트 만 지역에 조선에서 이주한 한인 농민들의 마을 - 지진헤, 얀치헤, 시디미, 아디미, 끄라베, 푸르겔만 - 이출현하였다(S.D. 아노소프, 『우쑤리주의 한인들』,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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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많은 부분을 경작지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옛 건축물에서 이동된 몇몇 초석들과 보다 작은 석재들이 돌무지를 이루어, 지금 성의 가운데에 작은 둔덕들이 형성되어 있다. 농민들은 성 내부로 물길을 내기 위해 성벽에 도랑을 파기도 하였다.
1930~1950년대에는 현지의 국경수비대 부대가 성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성의 북부, 서부, 남부, 그리고 성벽에 참호, 교통로, 엄폐부 등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크라스키노 성은 연해주의 다른 발해 유적들과 비교할 때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금속 탐지기를 가진 도굴꾼이 크라스키노 성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레벨 기준점을 훼손하였고, 부분적으로 문화층을 파괴하였다. 이제 유적에 대한 정기적인 통제와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 각주 001)
    1864년부터 포시예트 만 지역에 조선에서 이주한 한인 농민들의 마을 - 지진헤, 얀치헤, 시디미, 아디미, 끄라베, 푸르겔만 - 이출현하였다(S.D. 아노소프, 『우쑤리주의 한인들』, 1928).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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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적의 입지와 특징 자료번호 : kr.d_0015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