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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이가보산성/강초산성

李家堡子山城/草山城/李家堡山城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강초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本溪滿族自治縣 草河口鎭茳草村 李家堡子屯)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남북: 1,500m, 동서: 1,000m
입지
본계현 초하구진 강초촌 이가보자둔 북측
유적개관
강초산성으로도 불리는 산성으로, 평면형태 장방형이다. 남북 길이 1.5km, 동서 폭 1km가량이다. 성벽은 석축으로 잔고가 2~5m가량 된다. 외벽은 치석된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동문과 서문이 있다.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요녕성의 성도(省道)인 심양(瀋陽)에서 본계시를 거쳐 압록강 출해구 지역인 단동(丹東)까지 가는 304번 국도, 1113번 고속도로 사이에 위치한 초하구진 남쪽의 산성이다. 산성의 서벽이 두 도로와 나란히 서있다.
본계이가보산성, 이가보자산성(李家堡子山城), 초하구산성(草河口山城), 초산성(草山城), 강초산성(茳草山城)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성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두 줄기의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되었다. 전체 둘레는 약 5.5km로 큰 편이지만, 성 내부의 면적은 좁은 편이다.
성벽은 석축, 토축, 토석혼축으로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서쪽 성벽은 석벽으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특히 적의 진입방향인 서북쪽 성벽에는 방어시설인 치(雉)가 설치되어 있어서 방어성으로서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치는 고구려 성곽 축조의 대표적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문터에 대해서는 남쪽 골짜기에 1개만 있다는 보고, 동쪽과 서쪽에 한 개 씩 2개가 있다는 보고, 동쪽과 남쪽, 서쪽에 각각 한 개씩 총 3개가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어느 보고가 옳은지 명확하지 않다. 또 남쪽 문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배수구와, 비상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임시문터가 확인되었다.
성의 가장 높은 지역인 북벽 안쪽에는 망대로 보이는 건물유지가 확인 되었다. 몇 개의 건물터를 확인하였으나, 용도나 정확한 구조 등은 보고되지 않았다. 또 기록에는 저수지, 샘물, 고대 건물지 등이 있었다고 하나,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성벽 바깥쪽에 돌로 쌓은 또 다른 석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성벽에 이르는 것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세워진 차단벽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산성 축조의 특징과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고구려의 방어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요동방면으로부터 진입하는 적에 대한 방어에 힘을 쏟았다. 중요 요충지와 산곡지간에 많은 방어시설과 차단시설을 쌓아서 적의 진군을 막았고, 이 성들을 중심으로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이가보산성은 요동평야에서 압록강 방면으로 나아가는 진출로이자, 발해만으로 진행하고자 할 때 거쳐야 할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고구려의 방어성이다. 또 6km 북쪽에 운반산성(雲盤山城)은 이가보산성의 위성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서벽과 평행한 고속도로와 국도는 곧장 봉성시(鳳城市) 봉황산성(鳳凰山城, 고구려의 오골성(烏骨城)으로 비정된다.)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고구려의 방어체계의 일면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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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보산성/강초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30_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