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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부가루촌고분군

富家樓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미상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본계만족자치현 청하성진 부가루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本溪滿族自治縣 淸河城鎭 富家樓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본계현 청하성진 부가루자촌 동쪽에 위치
유적개관
19기의 석실이 분포한다. 석실은 지하에 위치하며, 이후 얇게 돌을 깔고, 거기에 대형판석으로 덮은 구조, 석실이 반지하이고 묘실 벽은 석재와 판석을 혼합하여 쓰고 위에는 대형 판석으로 덮은 구조, 그리고 묘실이 지하에 있고 큰 돌로 덮은 구조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길이 2m, 너비 1m 좌우이다.
유물개관
토기, 석촉 등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본계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인 소시진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 청하성진에서 발견된 무덤군이다.
1987년 관음각(觀音閣) 댐 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내 문물조사를 실시하면서 청하성진에서 고분군을 발견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첫 조사에서는 모두 19기의 석실묘가 있다고 보고되었으나, 2009년에는 10여기로 보고되었다. 고분 유형도 대다수가 적석묘(積石墓)와 봉토 석실묘 이고 1기의 석관묘(石棺墓)가 있다고 수정하였다.
보고된 고분 구조는 크게 세 종류이다. 첫 번째로 묘실이 지하에 위치하고 납작한 돌들을 쌓아 올려 천장돌로는 거대한 판석을 덮어 묘실을 조영한 방식과 반 지하 구조로 할석과 판석으로 벽을 세우고 여러 개의 판석으로 천장을 덮은 방식, 마지막으로 묘실을 지하에 위치시킨 상태에서 큰 돌로 벽을 쌓은 형태 등이다.
묘실은 대체로 2m×1m로 매우 작은 소형 고분으로 분류된다. 토기 파편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 중 적석묘가 포함되어 있고, 석실의 유형과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보았을 때 고구려 주민의 일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기원전 38년 무렵 주몽이 환인(桓仁) 일대에서 고구려를 개국한 이후부터 줄곧, 고구려는 요동의 진출을 두고 중국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다.
고구려가 요하 유역까지 진출한 시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385년에 고국양왕(故國壤王)이 현도군과 요동군을 함락한 바가 있으나 이는 5개월에 그친 일시적인 일이고, 대체로 광개토왕대에 들어 402년 숙군성 공격, 404년 요서 공격 등을 통해 고구려의 요하 유역진출이 가능해 진 것으로 파악된다. 또 본계 지역에 고구려 유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고구려가 요동으로 진출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계는 고구려의 요동진출의 첫 교두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요동 진출로는, 반대로 중국세력의 침입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찍부터 고구려는 요동에서 국도(國都)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에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이 지역의 유적들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청하성진은 소시진에서 25km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현재 관음각댐으로 인한 관음각호(觀音閣湖)가 생성되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수몰되기 이전에는 수로를 따라 이동이 용이하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인근 조전자촌(趙甸子村)에서 고구려 무덤으로 추정되는 석실묘 고분군이 발견된 바 있다.
부가루촌고분은 404년 고구려의 요동 점유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다고 보이며, 고구려의 요동진출 및 지역지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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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루촌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3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