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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고려 사람 김행성(金行成)의 국자감(國子監) 입학

  • 날짜
    976년 12월 (음)(開寶 9年(976) 12月)
  • 출전
    卷17 開寶 9年(976) 12月
이 해에 고려국 사람 김행성(金行成)주 001
각주 001)
金行成 : 생몰년 미상. 고려 출신 송의 관인. 976년 송나라 국자감에 입학하고 이듬해 進士試에 급제했다. 벼슬이 殿中丞에 이르렀는데 고려로 귀국하지 않고 송에 머물렀다. 祿俸이 부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畵工을 시켜 그 부모의 肖像을 그려 正寢에다 걸어 놓고 아내 史氏와 함께 옆방에 거처하면서 정성스럽게 모셨다. 淳化 연간(990~994) 安州의 通判으로 있다가 병이나 죽었다. 그의 부인 사씨는 재가하지 않고 수절했다. 아들 金宗敏과 金宗訥이 있었는데 김종민이 太廟齋郞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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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처음으로 국자감(國子監)주 002
각주 002)
國子監 : 北宋대 수도 開封에 설치된 교육기관. 國子學이라고도 불린다. 교육 외에 刻印을 관리하고 經書를 판매하는 업무를 맡았다. 7품 이상 관원의 자제가 입학했다. 북송 초에는 정원의 제한이 없었으나 후대에 200명으로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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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입학했다.

  • 각주 001)
    金行成 : 생몰년 미상. 고려 출신 송의 관인. 976년 송나라 국자감에 입학하고 이듬해 進士試에 급제했다. 벼슬이 殿中丞에 이르렀는데 고려로 귀국하지 않고 송에 머물렀다. 祿俸이 부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畵工을 시켜 그 부모의 肖像을 그려 正寢에다 걸어 놓고 아내 史氏와 함께 옆방에 거처하면서 정성스럽게 모셨다. 淳化 연간(990~994) 安州의 通判으로 있다가 병이나 죽었다. 그의 부인 사씨는 재가하지 않고 수절했다. 아들 金宗敏과 金宗訥이 있었는데 김종민이 太廟齋郞이 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國子監 : 北宋대 수도 開封에 설치된 교육기관. 國子學이라고도 불린다. 교육 외에 刻印을 관리하고 經書를 판매하는 업무를 맡았다. 7품 이상 관원의 자제가 입학했다. 북송 초에는 정원의 제한이 없었으나 후대에 200명으로 제한되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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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람 김행성(金行成)의 국자감(國子監) 입학 자료번호 : jt.k_0001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