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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아손공(我孫公; 아비코노키미)

아손공(我孫公; 아비코노키미)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도요키이리히토노미코토)의 아들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倭日向建日向八綱田命; 야마토히무카타케히무카야츠나타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아손공(我孫公)
아손씨(我孫氏)는 섭진국(攝津國) 신별(神別) 「아손(我孫)」 조와미정잡성(未定雜姓) 섭진국(攝津國) 「아손(我孫)」 조에도 게재되어 있다. 아손공의 아손은 아비고(阿比古; 아비코), 아미고(阿弭古), 오손(吾孫), 오언(吾彦)이라고 쓰기도 한다. 아비고는 원시적인 성(姓; 가바네)으로 간주된다. 아손공의 경우는 아손이 씨(氏; 우지)로 사용된 사례이지만 대개는 ‘지명+아손’의 형식, 예컨대 갈강아손(葛江我孫), ‘부명+아비고’의 형식, 예컨대 산부아비고(山部阿比古) 등과 같이 사용된다. 아손에 대해서는 미정잡성 섭진국 「아손(我孫)」조(1124) 참조.
화천국의 아손공(我孫公)은 여기에만 보인다. 다만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3년(835)11월 임진조에는 “하내국 사람 고(故) 종7위하 아손공제성(我孫公諸成; 아비코노기미모로나리)이 산위(散位) 동성(同姓) 아비고도성(阿比古道成; 아비코노미치나리) 등에게 추원조신(秋原朝臣; 아카하라노아손)이라는 성을 내렸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아손공이라는 성이 내려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835년에 아손공청성이 아손공에서 추원조신으로 개성한 것이 확인된다. 또 아비고도성을 아손공과 같은 성이라고 기재하고 있고 추원조신이라는 성은 이 2인을 대상으로 하여 내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천국의 아손공(我孫公)은 여기에만 보인다.
2.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풍성입언명은 숭준천황의 아들로 『고사기』 숭신천황단과 『일본서기』 숭신천황 48년 4월 무신삭 병인조에서 상모야군(上毛野君)과 하모야군(下毛野君)의 시조로 기술되어 있다. 좌경(左京) 황별(하) 「하모야조신(下毛野朝臣)」 조(097)의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참조.
3.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倭日向建日向八綱田命)
『일본서기』 수인천황(垂仁天皇) 5년 10월조에는 협수언왕(狹穗彦王)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상모야군(上毛野君)의 원조인 팔강전(八綱田)에게 명하여 협수언을 공격하게 하였다. 팔망전이 협수언왕이 쌓아둔 도성(稻城)을 공격하여 협수언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이 공에 의해 일향무일향언팔강전(日向武日向彦八綱田; 야마토히무카타케히무카히코야츠나타)이라는 호가 부여되었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일본서기』 에는 팔강전명이 상모야군(上毛野君)의 원조(遠祖)라고만 기재되어 있다. 이에 비해 『신찬성씨록』 에는 팔강전명 혹은 팔강다명(八綱多命) 등으로도 표기되어 있고, 풍성입언명의 아들 혹은 언협도왕(彦狹島王)의 아버지라는 계보 기사가 적혀 있다.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에 대해서는 화천국(和泉國) 황별(皇別) 「등미수(登美首)」 조(325)의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倭日向建日向八綱田命) 참조.
아손공씨는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倭日向健日向八綱田命)의 후손이라 주장하였지만, 이 관계를 증명할 자료가 「고기」 와 「구전」 등에 존재하지 않아서 세운 조상도 의문시되어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이것은 섭진국 아손씨(我孫氏; 아비코)가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의 아들 팔강다명(八綱多命; 야츠나타노미코토)의 후손임을 주장했지만 근거 부족으로 미정잡성에 기록된 것과 같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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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손공(我孫公; 아비코노키미)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1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