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강(三下江) 어귀에서 시찰 지역을 두고 3일간 논쟁 끝에 서두수(西頭水)·홍단수(紅短水)·정계비 일대로 나누어 조사하기로 약정
○ 10월 12일 30리를 가서 삼하강(三下江) 어귀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청국 인사들(華員)이 갑자기 이의(異議)를 제기하며 서두수(西頭水)주 545를 향해 가려고 하였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계비의 경계라고 의심한 것이다. 내가 굳게 고집하여 허락하지 않고 단지 산으로 올라가자고 요구하였으니 저들도 따르지 않았다. 3일 동안 논쟁하다가 각자 인원을 내어 세 길로 나누어 조사하기로 약정(約定)하였다. 우리 종사관(從事官) 조창식(趙昌植)주 546, 전(前) 첨지(僉知) 이후섭(李垕燮), 화원(畵員) 김우식(金禹軾)과 중국 인사 덕옥(德玉)이 동행하여 홍단수(紅丹水)를 향해 갔다. 우리 수행원[隨員] 출신(出身) 오원정(吳元貞)과 중국 화원 염영(廉榮)이 동행하여 서두수를 향해 갔다. 나와 수행원 최두형(崔斗衡), 최오길(崔五吉)과 중국측 진영(秦煐), 가원계(賈元桂)가 동행하여 백산(白山)주 547으로 향해 갔다. 세 길로 각각 나누어 가는데 전송할 적에 서로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