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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평양와산동유적

平壤臥山洞遺蹟
  • 저필자
    문수균(미래문화재연구원)
  • 날짜
    1961
  • 시대
    청동기
  • 위치
  • 원소장처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규모
남북: 6.9m, 동서: 4.7m
입지
1961년 3월 발굴, 조사.
유적개관
6개의 팽이그릇 주거지와 고구려시대의 고분과 유사한 고분 발견. 고분은 심하게 파괴되어 주거지만 발굴. 주거지의 성격은 현재의 지층에서 40㎝ 정도 밑으로 5∼10㎝ 정도의 검은 탄화층 밑에 장방형의 주거지가 노출됨. 완전한 지상건물과 함께 50∼60㎝ 이상 지하로 들어간 반움집형이 동시에 있었음.
출토유물
* 첨저형토기, 대패날, 반월형석도 4점, 석부 2점, 석촉 1점, 성형석부, 기타 석기편.
참고문헌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 팽이그릇유적 조사보고」
해설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이다. 1961년에 발굴 조사하여 주거지 6기와 고분 1기가 확인되었다. 고분은 고구려시대의 고분과 유사하며 발굴조사 당시 심하게 파괴되어 그 현상은 알 수 없고 주거지만 발굴하였다. 주거지는 지표아래 40㎝정도에서 노출되었으며, 장축 6.9m, 단축은 4.7m 깊이 60㎝의 장방형이다. 기둥자리(柱穴)는 주거지 밖 둘레에 있고 내부에는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기둥을 세운 곳이 있다. 화덕(爐址)은 돌두름식(圍石式)이다. 유물은 팽이형토기·대패날·반월형석도·석촉 등이고, 주변에서 반월형석도 4점, 석부 2점, 석촉 1점, 성형석부, 기타 석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팽이형토기는 옹(甕)형과 호(壺)형이 모두 나온다. 이와 같은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로는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황해남도 용연군 석교리, 평양시 승호구역 금탄리·신촌리·묘송리 등이 있다.
유적의 연대는 팽이형토기의 구연부와 동체의 형태로 볼 때, 비교적 이른 시기로 편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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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와산동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40_0010_006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