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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조선통신사의 에도 출발과 일행의 규모

一. 11월 25일 아침에 눈이 내렸고, 에도로 출발했다.
〃통신사가 교토의 무라사키노를 출발했다.
〃통신사 3인은 이쪽에서 준비한 가마를 탔다. 조선에서 가지고 온 가마는 타지 않고 먼저 가지고 갔다.
〃번주님은 통신사보다 늦게 출발하셨다.
〃부젠노카미는 통신사보다 먼저 출발하여 이타쿠라 호슈님에게 들러, 바로 오쓰(大津)주 001
각주 001)
오쓰(大津): 시가현(滋賀県) 서부에 위치한 시이자 현청 소재지. 667년에 덴지(天智) 천황이 현재의 오쓰시로 천도하여 오쓰쿄(大津京)라고 한 것을 비롯해 오랜 역사를 갖는 고도(古都)이며, 신사와 절이 많다. 동쪽은 비와(琵琶) 호수에 접하고, 서쪽은 교토시와 경계선을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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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갔다. 오이와케(追分)주 002
각주 002)
오이와케(追分): 간선가도(幹線街道)에서 지선가도(支線街道)로 가는 분기점을 말하며, 그곳에 발달한 집락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짐 나르는 말과 소 등을 좌우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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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말을 타고 거기서부터 가마주 003
각주 003)
원문의 와우다(わうだ)는 오타[おうた(箯輿)]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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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탔으며, 고쇼(小姓) 요시치로(與七郞), 산사부로(山三郞), 기나이 조테쓰(喜內如鐵) 등은 노리카케(乘掛)주 004
각주 004)
말의 양쪽 옆구리에 아케니(明荷)라고 하는 쓰즈라(葛籠, 옷 넣는 옷고리짝)를 걸쳐 놓고, 그 위에 직물을 깔고 사람이 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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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말을 탄 사람은 시치에몬, 주에몬, 간에몬, 야에몬, 고토 고사에몬 등 6인주 005
각주 005)
5인만 열거되어 있어, 기록 과정에서 1명이 누락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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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부젠노카미의 무구(武具)로는 짝을 맞춘 창 2자루, 대조모(大鳥毛) 1자루, 열십자 창(十文字), 직창(直槍), 장도(長刀) 등이다. 이들이 먼저 출발하고 나중에 왔다. 부젠노카미는 건창(鍵槍)주 006
각주 006)
가기야리(鍵槍): 창의 일종. 손잡이 상부에 열쇠 모양을 한 철제(鉄製) 요코테(橫手)를 장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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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루로 호슈님에게 들렀다가 오쓰로 갔다.
〃조선인 부교 야나기 세베에(柳瀨兵衛)님, 아이바 신에몬(相庭新右衛門), 다케모토 간다유(竹本勘太夫) 등 3인은 조선인이 모두 먼저 출발한 뒤 나중에 말을 탔다.
〃번주님의 덴마(傳馬)주 007
각주 007)
에도시대에 가도(街道)의 숙역(宿驛)에 상비되어, 공무의 인력이나 화물을 연계 운송하는 데 사용되던 말. 전국시대(戦国時代)에 다이묘들은 군사적인 필요에서 영국(領國)에 숙역을 설치하여 전마(傳馬)를 항시 비치했으나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은 에도시대였다. 이에야스가 1601년 도카이도(東海道), 나카센도(中山道)에 숙역을 많이 지정하여 36마리씩 전마를 상비하게 한 것이 처음이고 그 후 상비 숫자가 증가했다. 전마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막부의 공용(公用), 다이묘, 공가(公家) 등의 특권자였으나 여기에는 무임(無賃)의 슈인덴마(朱印伝馬)와 비용을 지불하는 다친덴마(馱賃傳馬) 등 두 가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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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말의 수.
〃부젠노카미의 덴마(傳馬)용 말을 31필로 하기로 했으나 29필을 받았다.
〃교토·오사카의 조선인부교는 스기무라 한스케(杉村半助), 요시다 사쿠에몬(吉田作右衛門), 도보 사자에몬(唐坊佐左衛門), 이즈미 주자에몬(伊住十左衛門) 등이다.
〃이타쿠라 호슈님이 다나무라 간베에(田奈村勘兵衛)님과 하기와라 리헤에(萩原理兵衛) 등 2인을 에도까지 노정을 담당하는 조선인부교로 임명했다.
〃부젠노카미의 수하들이 에도로 가는 데 말 탄 1인에 작은 짐과 말 1필씩 준비하고, 아랫사람들의 짐을 부치도록 해서 허용했다.
〃도검 담당 14인에게 작은 짐과 말 2필을 허용했다.
〃마구간 담당 11인에게 작은 짐과 말 2필을 허용했다. 말 도구를 추가해야 하므로 이렇게 했다.
〃보행하는 고쇼(小姓) 5인에게 작은 짐과 말 1필.
〃가와모토 야자에몬(川本彌三右衛門)에게 노리카케(乘掛) 1필을 허용.
〃무라노 사쿠에몬(村野作右衛門)에게 노리카케 1필을 허용. 단, 이토는 하사미바코(挾箱)주 008
각주 008)
무가(武家)에서 공무로 외출할 때 수행하는 사람에게 짊어지게 하는 물품 상자. 장방형(長方形) 상자의 양 끝에 고리가 달려 있어서 그 고리에 짊어지는 막대기를 통과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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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허용했다.
〃제제(膳所)의 성주(城主) 스가누마 오리베(菅沼織部)님이 오쓰까지 가셔서 부젠노카미의 숙소에 가서 문안을 하셨다.
〃관사(官使), 상상관, 상관, 중관까지
   총 70인에게 어젯밤 접대한 요리는 문서에 적은 바와 같다.
   이상.
一. 중관·통사(通事) 합계 109인의 접대 요리 순서는, 본선(本膳)은 다리가 달린 상(木具)에 반찬 3가지, 이선(二膳)은 다리 달린 상에 반찬 2가지,
一. 하관 140인은 다리 달린 상에 국 하나, 반찬 3가지. 총 320인이다.
    인마(人馬) 수
一. 타는 말 150필
一. 짐 말 350필
一. 인부 315인
   이상. 이 밖의 것은 넣지 않음.

  • 각주 001)
    오쓰(大津): 시가현(滋賀県) 서부에 위치한 시이자 현청 소재지. 667년에 덴지(天智) 천황이 현재의 오쓰시로 천도하여 오쓰쿄(大津京)라고 한 것을 비롯해 오랜 역사를 갖는 고도(古都)이며, 신사와 절이 많다. 동쪽은 비와(琵琶) 호수에 접하고, 서쪽은 교토시와 경계선을 접하고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오이와케(追分): 간선가도(幹線街道)에서 지선가도(支線街道)로 가는 분기점을 말하며, 그곳에 발달한 집락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짐 나르는 말과 소 등을 좌우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왔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원문의 와우다(わうだ)는 오타[おうた(箯輿)]로 판단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4)
    말의 양쪽 옆구리에 아케니(明荷)라고 하는 쓰즈라(葛籠, 옷 넣는 옷고리짝)를 걸쳐 놓고, 그 위에 직물을 깔고 사람이 타는 것. 바로가기
  • 각주 005)
    5인만 열거되어 있어, 기록 과정에서 1명이 누락된 듯하다. 바로가기
  • 각주 006)
    가기야리(鍵槍): 창의 일종. 손잡이 상부에 열쇠 모양을 한 철제(鉄製) 요코테(橫手)를 장착한 것. 바로가기
  • 각주 007)
    에도시대에 가도(街道)의 숙역(宿驛)에 상비되어, 공무의 인력이나 화물을 연계 운송하는 데 사용되던 말. 전국시대(戦国時代)에 다이묘들은 군사적인 필요에서 영국(領國)에 숙역을 설치하여 전마(傳馬)를 항시 비치했으나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은 에도시대였다. 이에야스가 1601년 도카이도(東海道), 나카센도(中山道)에 숙역을 많이 지정하여 36마리씩 전마를 상비하게 한 것이 처음이고 그 후 상비 숫자가 증가했다. 전마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막부의 공용(公用), 다이묘, 공가(公家) 등의 특권자였으나 여기에는 무임(無賃)의 슈인덴마(朱印伝馬)와 비용을 지불하는 다친덴마(馱賃傳馬) 등 두 가지가 있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8)
    무가(武家)에서 공무로 외출할 때 수행하는 사람에게 짊어지게 하는 물품 상자. 장방형(長方形) 상자의 양 끝에 고리가 달려 있어서 그 고리에 짊어지는 막대기를 통과시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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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에도 출발과 일행의 규모 자료번호 : kn.k_0005_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