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가 러시아황제에게 보낸 서신
짐의 어진 형제 아국(俄國) 황제폐하에게 삼가 알립니다. 짐이 생각건대 현재 천하의 대세가 예전과 매우 달라져 사변(事變)이 단일하지 않고 형편도 각기 달라 우리 대한(大韓)이 일찍이 갑오년 이후로 판국의 형세가 위태로우며 화변(禍變)을 예측할 수 없어 국권을 갑자기 잃게 되더니 근년 이래로 다행스럽게도 귀 황제 폐하에게 의지하게 되어 고아한 뜻이 은은하여 [현 상태를] 유지하고 진작케 함이 진실로 작지 아니하니 마음속으로 감격함은 종이와 먹으로 다 펼쳐 말씀드릴 길이 없습니다. 이번 금년[1898년] 2월 즈음에 귀국 고문관(顧問官)과 사관(士官)을 해고한 일은 참으로 짐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역도(逆徒)와 간사한 무리들이 계략을 꾸며 내어 인심을 선동한 까닭으로 옳은 것을 반대하고 마땅한 일을 배반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모두 인심이 진정될 수 없을뿐더러 간악한 흉계의 피해를 받은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귀 황제폐하는 크게 헤아리시고 포용하시는 덕성으로 우리나라를 유지(維持)하고 보호(保護)하실 의향이 의당 시종여일(始終如一)하실 터이니 격식을 넘어 깊이 헤아려 주소서. 우리나라는 눈앞의 풍기(風氣)가 갑자기 변하고 기강(紀綱)이 떨치지 못하여 이상하게도 떠들썩하고 어수선하니 변통할 수 있는 수단을 조금도 늦춰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세계 각국 가운데 국권(國權)이 홀로 존귀하고 명성과 위엄이 혁혁함으로 귀국과 같은 나라가 없고, 우리나라 사정을 깊이 이해하기가 우리나라에 주재한 귀국 공사(公使)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두 나라의 외교 우의(友誼)를 다시 돈독히 하며 뒷감당 할 수 있는 수단을 깊이 헤아리시고 수시로 귀 황제폐하께 전달케 할 것이오니 힘써 바라는 것은 귀 황제폐하께서 옥음(玉音)을 속히 내리시길 이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울러 귀 황제폐하의 복록(福祿)과 장수(長壽)가 끝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광무(光武) 2년[1898년] 12월 20일 경운궁(慶運宮)에서 보냅니다.
폐하의 어진 형제
이형(李凞)
황제어새(皇帝御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