佩刀礪而見等威, [插]金羽以明貴賤.
佩刀礪而見等威, [插]주 001金羽以明貴賤.
魏收주 002後魏書東夷傳曰: “高驪, 頭著折風, 其形如弁, 傍插鳥羽, 貴賤有差. 立則反拱.” 蕭子顯齊書東주 003夷傳曰: “高驪俗服窮袴, 冠折주 004風一[梁]주 005, 謂之幘주 006. 知讀五經. 使人在亰師, 中書郞王融戯曰: ‘服之不衷, 身之灾也, 頭上定是何物.’ 答曰: ‘此卽古弁之遺象也.’ 其俗拜주 007曳주 008一脚, 受令주 009跪. [行]주 010必走, 以爲恭주 011.” 梁元帝職貢圖云: “高驪, 婦人衣白, 而男子衣紅주 012錦, 飾주 013以金銀. 貴者冠幘, 而[無]주 014
각주 014)
後以金銀爲鹿耳주 015, 加之幘上. 賤者冠折風. 穿耳以金鐶. 上衣白衫, 下白주 016長袴, 腰주 017有銀帶. 左佩礪, 而右佩五子刀. 足履豆禮鞜주 018.” 高驪記云: “其人亦造주 019錦, 紫地纈文者爲上, 次有五色錦, 次有雲布錦. 又造白疊布, 靑布而尤佳. 又造鄣日, 華言接籬, 其毛卽靺鞨猪髮也.”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無」를 보입. 앞서 9번째 정문에서 “大加主[簿]著幘 無後”라고 했던 부분이나 『양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所著似幘 而無後”라고 했던 부분을 볼 때, 본문에서는 「無」의 결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짐. 장경모본 「직공도」에서는 “貴者冠幘 而無復”이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復’을 ‘後’의 오기로 본다면 이 또한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지』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라고 했던 부분이나 『후한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皆著幘 如冠幘而無後”라 했던 부분 등을 통해 볼 때, 중국과 달리 幘의 뒤쪽이 없는 형태의 고구려 幘은 그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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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는 글자가 없다. 죽내본·길림본 원문대로, 탕천본 「無」를 보입. 앞서 9번째 정문에서 “大加主[簿]著幘 無後”라고 했던 부분이나 『양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所著似幘 而無後”라고 했던 부분을 볼 때, 본문에서는 「無」의 결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짐. 장경모본 「직공도」에서는 “貴者冠幘 而無復”이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復’을 ‘後’의 오기로 본다면 이 또한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지』 고구려에서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라고 했던 부분이나 『후한서』 고구려에서 “大加主簿皆著幘 如冠幘而無後”라 했던 부분 등을 통해 볼 때, 중국과 달리 幘의 뒤쪽이 없는 형태의 고구려 幘은 그 전통이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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