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야[산]에서 의심을 품게 했으니, 방분의 공이 빨리 이루어졌다.
탁야[산]에서 의심을 품게 했으니, 방분의 공이 빨리 이루어졌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영원 7년(95)에 안문태수주 001 방분을 행도요장군으로 삼았다. 봉후는주 002 새외에서 두 부로 나누고, 자신은 우부를 거느려 탁야산 아래에 진을 치고, 좌부는 삭방의 서북쪽에 진을 치게 하니 서로 간의 거리가 수백 리였다. [영원] 8년(96) 겨울에 좌부의 호는 스스로 상대가 배반하였다고 의심하여 삭방주 003의 새로 되돌아 들어왔다. 방분이 그들을 영접하여 받아들이고 위무하니 정병 4천인과 노약자 1만여 구가 모두 항복했다. 나누어서 북변에 살게 했다.”
• 참고
『後漢書』 卷89 南匈奴 後帝知朱徽杜崇失胡和 又禁其上書 以致反畔 皆徵下獄死 以鴈門太守龐奮行度遼將軍 逢侯於塞外分爲二部 自領右部屯涿邪山下 左部屯朔方西北 相去數百里 八年冬 左部胡自相疑畔 還入朔方塞 龐奮迎受慰納之 其勝兵四千人 弱小萬餘口悉降 以分處北邊諸郡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