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공(太史公)의 말
태사공(太史公)은 이렇게 말한다.주 001
『우본기』(禹本紀)에 “황하는 곤륜에서 나온다. 곤륜은 그 높이가 2,500여 리이고, 해와 달이 서로 피해서 숨으면서 광명을 가져다 준다. 그 위에는 예천(醴泉)과 요지(瑤池)주 002가 있다.”고 씌어 있다. 이제 장건이 대하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황하의 근원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우]본기에서 말하는 곤륜을 도대체 어디에서 보았다는 말인가?주 003
각주 003)
이런 까닭에 구주(九州)의 산천은 『상서』(尙書)[에서 묘사한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러므로] 『우본기』와 『산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괴이한 것들에 대해서 나는 감히 말하지 않으리라.주 004
『集解』는 鄧展을 인용하여 “漢나라 [사람들이] 河源에 다다랐다고 말하는데, 어디에서 崑崙을 보았단 말인가? 『尚書』에는 積石에서 黃河가 導出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황하의 근원이 積石에 있다는 말이다. 積石은 金城의 河關에 있기 때문에, [황하가] 崑崙에서 나온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또한 『索隱』은 ‘惡覩夫謂昆侖者乎’라는 구절에 관해서 “惡의 音은 ‘烏’이며, 烏는 어디에서[於何]라는 뜻이다. 睹는 본다는 것이다. 張騫이 河源에 다다르고 大夏·于窴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崑崙을 보았으며 황하가 발원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인가?”라는 뜻이라고 풀이하면서, “이는 『禹本紀』와 『山海經』의 虛妄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山海經』에서는 ‘黃河가 崑崙의 東北隅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西域傳」에서는 ‘남쪽의 積石山으로 분출해서 中國의 河가 된다.’고 하였으니, 積石은 본시 황하의 發源이 아니다. 또한 『尚書』도 ‘洛水가 熊耳에서 導出된다.’고 했는데, 사실은 冢嶺山에서 나오는 것이니 곧 동쪽으로 熊耳를 경유하는 것이다. 이제 이 뜻을 미루어 보건대, 황하가 과연 그러하다. 즉, 황하의 근원은 본시 崑崙인데 [거기서] 潛流하여 于闐에 이르고, 다시 東流하여 積石에 이르러서 비로소 中國에 들어오는 것이니, 『山海經』과 『禹貢』이 각자 그런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다.”라고 하여, 『尚書』의 기록과 『山海經』과 『禹貢』의 기록, 그리고 張騫의 보고 등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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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3)
『集解』는 鄧展을 인용하여 “漢나라 [사람들이] 河源에 다다랐다고 말하는데, 어디에서 崑崙을 보았단 말인가? 『尚書』에는 積石에서 黃河가 導出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황하의 근원이 積石에 있다는 말이다. 積石은 金城의 河關에 있기 때문에, [황하가] 崑崙에서 나온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또한 『索隱』은 ‘惡覩夫謂昆侖者乎’라는 구절에 관해서 “惡의 音은 ‘烏’이며, 烏는 어디에서[於何]라는 뜻이다. 睹는 본다는 것이다. 張騫이 河源에 다다르고 大夏·于窴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崑崙을 보았으며 황하가 발원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인가?”라는 뜻이라고 풀이하면서, “이는 『禹本紀』와 『山海經』의 虛妄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山海經』에서는 ‘黃河가 崑崙의 東北隅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西域傳」에서는 ‘남쪽의 積石山으로 분출해서 中國의 河가 된다.’고 하였으니, 積石은 본시 황하의 發源이 아니다. 또한 『尚書』도 ‘洛水가 熊耳에서 導出된다.’고 했는데, 사실은 冢嶺山에서 나오는 것이니 곧 동쪽으로 熊耳를 경유하는 것이다. 이제 이 뜻을 미루어 보건대, 황하가 과연 그러하다. 즉, 황하의 근원은 본시 崑崙인데 [거기서] 潛流하여 于闐에 이르고, 다시 東流하여 積石에 이르러서 비로소 中國에 들어오는 것이니, 『山海經』과 『禹貢』이 각자 그런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다.”라고 하여, 『尚書』의 기록과 『山海經』과 『禹貢』의 기록, 그리고 張騫의 보고 등이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태사공(太史公), 장건
- 지명
- 황하, 곤륜, 곤륜, 황하, 곤륜, 구주(九州)
- 서명
- 『우본기』(禹本紀), 『상서』(尙書), 『우본기』, 『산해경』(山海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