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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김해 가야의 숲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2004
  • 시대
    원삼국~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431번지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무덤
입지
2004년 동아문화재연구원(現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시행.
유적개관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 사이에서 가야의 숲 조성계획부지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원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목관묘 3기와 목곽묘 1기가 확인되었음. 통나무관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3호묘에서 다수의 칠기가 확인된 것이 특징임.
출토유물
* 칠기 부채, 칠초철검, 동경, 용도미상 칠기편, 주머니호, 양이부호, 조합형우각형파수부호, 동과, 철환, 철모, 철부, 따비, 두형 칠기, 판상철부 등
참고문헌
「김해 가야의 숲 조성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해설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431번지 일대에 위치하는 원삼국~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북쪽으로는 대성동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정상과 남쪽의 봉황동유적 사이를 연결하는 나지막한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1999년 이후 김해 중심지에 위치한 구지봉, 봉황동유적, 수로왕릉과 왕비릉, 대성동고분군 등의 유적지를 정비하는 가야문화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그간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의 사이에 자리잡아 양쪽을 단절시키던 공설운동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2003년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2004년 동아문화재연구원(現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유적으로 널무덤[목관묘(木棺墓)] 3기와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 1기가 확인되었다.
3호널무덤은 해발 6.5m내외에 조영되어 있는데 동서방향이 긴 형태로 등고선과 직교(直交)한다. 무덤구덩[묘광(墓壙)]의 규모는 길이 260cm, 너비 140cm, 깊이 82cm이며, 평면형태는 모서리가 둥근[말각방형(抹角方形)] 형태이다. 널의 크기는 길이 170cm, 너비 75cm이며 통나무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통나무널은 통나무를 절반으로 가른 다음, 그 양쪽 안을 파내어 시신을 안치한 후 나무덮개[목개(木蓋)]로 덮었던 형태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허리구덩[요갱(腰坑)]이 확인되는데, 허리구덩 바닥에는 칠기(漆器)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바닥면의 경사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게 이루어져 있고, 널 내부에서 확인된 부채의 출토위치를 고려할 때 시신의 머리방향은 동쪽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칠기 부채 2점, 청동제 부속금구가 장식된 칠초철검(漆鞘鐵劍) 1점, 청동거울[동경(銅鏡)] 1점, 용도미상의 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부채의 경우 시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1점과 시신의 오른쪽 가슴에 해당하는 부위에 또 다른 부채 1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부채를 수습한 후, 그 바로 아래에 가죽으로 추정되는 유기물질에 싸여져 있는 문양이 없는 청동거울[소문경(素文鏡)] 1점이 출토되었다. 청동제 부속금구가 장식된 칠초철검은 북벽의 가운데 부근에서 출토되었는데, 철검의 검신(檢身)이 머리쪽으로 향해 있어 시신에 착용시켜 묻은 것이 아니라 가슴위에 올려놓은 후 그 위에 부채를 부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유물로는 주머니항아리(壺) 2점, 두귀(손잡이)달린항아리[양이부호(兩耳附壺)] 1점, 조합식(組合式)쇠뿔모양손잡이항아리[우각형파수부호(牛角形把手附壺)] 2점 등의 토기류와 청동꺽창[동과(銅戈)], 쇠고리[철환(鐵環)], 쇠투겁창[철모(鐵鉾)], 쇠도끼[철부(鐵斧)], 칠기류 다수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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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가야의 숲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30_0020_0050